프라이버시 보호: 슬기와 민의 단독 전시용 작업들
지난 십여 년 동안 슬기와 민이 전개한 작업의 스펙트럼 속에서, 단독 전시용 작업은 언제나 예외적이고 주변적인 위치에 있었다. 최성민 또는 최슬기의 이름으로든, 슬기와 민이라는 공동의 이름으로든 간에, 그래픽디자이너로서 이들의 작업은 대개 협업의 프레임 속에서 성립했다. 이런 작업의 상당수는 다른 미술가나 기획자의 전시를 구성하고 보충하는 다양한 형태로 전시장 안에 들어왔고, 그것은 미술 제도의 안팎에 이미 존재하던 그래픽디자인의 관습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그 비가시성을 드러내는 이중의 행위로서 유효성을 획득했다.
돌이켜 보면 슬기와 민의 일관된 관심사는 결국 디자이너의 일, 다시 말해 디자이너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실상 이것은 슬기와 민이 작가 또는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미술 전시뿐만 아니라 이들이 디자이너 또는 기획자로서 개입한 디자인 전시를 포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주제다. 역사가나 이론가가 아니라 실무자로서, 슬기와 민은 디자인의 사회적 위치나 제도적 조건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래픽디자이너가 각자의 고유한 내적 논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율적 활동공간의 가능성을 거듭 타진했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이기도 했고, 실패이기도 했다. 예술과 현실의 이원적 대립과 극복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미술 제도의 관점에서나, 현실을 위한 현실 내부의 예술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디자인 제도의 관점에서나, 디자인과 자율성의 결합은 종종 불가능하거나 거짓되거나 무의미하거나 또는 애초에 인식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유령처럼 취급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자율성을 성취했고 그럼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찬미되거나, 또는 현실로부터 괴리되었고 그럼으로써 디자인의 뿌리깊은 원죄를 새롭게 반복할 뿐이라고 비난 받았다.
결과적으로 슬기와 민은 여러 분과에 발을 걸치면서도 어느 분과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넓고도 좁은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독 전시 또는 개인전은 본인들이 나서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해명의 장으로 마련되기보다 오히려 가장 사적인 자리로, 프라이버시 보호와 공적인 발표를 동시에 수행하는 일종의 퍼즐 게임처럼 구성되었다. 공식적으로 완성된 작업에서는 드러내기 어려운 개인적인 관심의 기록, 목적 없는 연습, 가벼운 농담으로 이루어진 단독 전시용 작업들은, 슬기와 민의 가장 내밀한 차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도마뱀 꼬리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두 개의 꼬리에서 출발해 보자. 슬기와 민은 2006년과 2008년 단독 전시를 위해 각각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와 <현대적 구성 연습>이라는 작업 방법을 고안했다. 뒤이은 2009년과 2010년에도 최성민과 최슬기라는 각자의 이름으로 번갈아 개인전을 열었지만, 양쪽 모두 각자의 학습시대를 정리하는 일종의 자율적 졸업식으로, 반복 불가능한 이벤트로 완료되었을 뿐 후대를 남기지는 않았다. 이후 슬기와 민은 듀오로서든 개인으로서든 자발적으로 단독 전시를 연 적이 없다. 그러나 제목을 미리 정해 놓고 다수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각각의 단독 전시를 연쇄 또는 병치시키는 기획 초대전에 응하는 경우는 있었다. 2012년 헨켈과 대안공간 루프가 공동 진행한 <순간의 접착>과 2014년 에르메스 재단에서 진행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이 그렇고, 이번 2016년 <7 1/2: 암호적 상상>의 네 번째 전시 또한 이 계열에 속한다. 미술가로서 호명된 이 세 번의 전시를 성립시키는 동안, 슬기와 민은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와 <현대적 구성 연습>의 가능성들을 차근차근 소진하면서 <테크니컬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선적인 진화의 여정이라기보다 차라리 상황과 맥락의 변화 속에서 재방문과 재시도의 자취들이 서로 뒤엉키거나 덧씌워지는 난맥상에 가까웠다.
먼저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소비자용품에 새겨져 있지만 소비자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 아닌 미세한 기호들을 채집하고 확대하는 작업으로, 디자이너로서 그간의 작업을 소개하는 2006년의 첫 단독 전시 <팩토리 공육공사이일-공육공오일삼>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그것은 현대 디자인과 제조업의 기능적, 효용적 논리에 따라 근본부터 재조형된 세계에서 마주치는 작은 미스테리로서 제시된다. 하지만 이 글자들은 의미에 대한 궁금함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차라리 무의미를 구현하는 흥미로운 형태로서 유효하다. 이들은 관객이 소비자로서 늘상 마주치지만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의 표본으로서, 아마도 해당 사물의 제조 과정에서 유의미했을 정보를 담고 있겠지만, 그런 것을 굳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이 무관심이야말로, 일상의 모든 것이 당연하게 양산되는 세계, 현대 디자인과 제조업의 논리가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완전히 자연화된 세계의 새로운 경이다.
슬기와 민은 과거 자연적 자연 속에 살던 사람이 자연스럽게 꽃을 꺾듯이 이 흥미로운 무의미의 형태들을 수집하고 늘어놓았다. 그것은 2000년대 중반의 그래픽디자이너가 자기 작업을 소개하면서 별첨하는 당대의 시각적 논평일 수도 있었고, 또는 그저 전시장 공간에 어울리는 적당한 장식일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런 장식으로서 외부자가 바라본 전시라는 형식에 대한 시각적 논평일 수도 있었다. 이처럼 ‘(의미가 있어도 없어도 무방한) 채집을 통한 논평’이라는 방법은,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가전 제품의 관습적 버튼 이미지를 금속 버튼 또는 배지 형태로 제작한 <버튼 버튼>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명되었다. 이미 디자이너가 있어도 없어도 무방할 것 같은 시대에 젊은 디자이너가 내보이는 순진함과 냉소, 낙관과 자신감의 보기 좋은 조화. 여기서 무언가 읽어야만 했다면 나는 그런 것을 읽어냈을 것이다.
이는 2016년의 전시장에 놓인 <녹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아무 메시지도 전하지 않는” 여러 가지 크기의 흰색 배지들과 직접적인 대구를 이룬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연결 고리를 던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치 크기 별 견본처럼 나열된 이 배지들은, 미술 전시와 관련 이벤트에서 서브컬처의 굿즈 형식에 대한 전유로서 또는 그저 흥을 돋우고 기억을 남기는 수단으로 금속 배지가 급속도로 유행하고 심지어 회고전까지 끝나버린 2015년 시즌에 대한 논평일 수도 있다. 그리고 “녹지 않습니다”라는 제목과 “데이비드 해먼스에게 바친다”라는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1983년 해먼스가 노상에서 다양한 크기로 뭉친 눈 덩어리를 판매했던 유명한 <블리자드 볼 세일>과 연관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설들을 기각한다면, <녹지 않습니다>는 그저 백색 안료로 코팅된 금속 배지들을 판지와 투명 비닐로 포장한 한 세트의 물질 덩어리다. 그것은 눈썹을 씰룩 거리며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처럼 정보 값이 있는 이미지를 삭제하고 물질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접근은 이번 전시의 주 작업인 <컨셉트 드로잉>에서도 재차 발견된다. 파이형 도표 샘플을 뿌옇게 확대하여 대형 배너 또는 차양 형태로 인쇄한 이 작업은 2014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테크니컬 드로잉>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당시 슬기와 민은 기술적 도면의 일부를 흐릿하게 확대 출력해서 액자에 걸고, 이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원래의 도면을 확대하고 균질 하게 블러를 먹임으로써 관객이 그것을 문서로 식별하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정보의 독해를 시도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것은 한때 사진이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또는 그저 전시장 공간에 부합하기 위해 독해의 대상으로서 그래픽적 문서의 스케일과 시점을 버리고 묵상의 대상으로서 회화의 스케일과 시점을 취했던 것을 연상시켰다. 당시 슬기와 민은 이러한 행동을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신’ 개념을 역전시킨 ‘인프라플랫’이라는 신조어와 연결함으로써, 미술을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형식적 조건을 탐구했던 과거의 현대 미술과 현재의 자신들을 뒤집어진 거울상처럼 병치시켰다.
그 결과는 미술이었나?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작업보다는 답변자를 포함한 현재의 제도적 상황을 마주보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슬기와 민이 미술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나? 이 질문은 남의 내면에 대한 섣부른 추측을 요구하므로 역시 답변자에게 유리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의 명확한 흑백 이미지가 어째서 <테크니컬 드로잉>의 회색 그라데이션으로 변형되었는지 질문해볼 수는 있다.
그것은 몇 가지 선택지를 기각한 결과였다. 첫 번째 선택지는 물론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의 접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그래픽 오브젝트 또는 정보 이미지를 채집하고 나열하는 (일종의 수동 리트윗 같은) 접근은 전시용과 비전시용 작업을 통틀어 슬기와 민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잡았고, 2011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목록 형태의 칼럼 <리스트마니아>를 기점으로 독특한 글쓰기와 말하기 방법으로도 발전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를 구현하는 흥미로운 형태와 동어반복의 동어반복성을 드러내는 권태로운 형태 사이에서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후자로 기우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전시용 작업이라면 당시 슬기와 민에게는 <현대적 구성 연습>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이것은 기호로 인지되지 않는 추상적 형태의 기본 요소들 또는 규칙들을 채집하여 제3의 구성과 매체로 변환하는 작업으로, 2008년 두 번째 단독 전시 <김진혜 공팔공사공이-공팔공십사>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2012년 <순간의 접착>에서 재차 시도되었다. 그 결과는 순수 추상 조형처럼 보였지만, 실은 가상적 또는 물리적 차원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젝트를 주어진 초기 조건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조합한 것에 가까웠다. <현대적 구성 연습>은 이처럼 이미 정형화된 형태들에서 출발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형태에 다다르는 의외의 궤적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과 설령 가능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무심함 사이에서 성립했다. 그러나 이 불안정한 위치가 유지되고 있었을 때에도, 그런 희망과 그런 무심함 사이에서 연습을 반복하는 디자이너의 형상은 어딘가 불길한 회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슬기와 민은 2012년 <순간의 접착>에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현대적 구성 연습>에 덧붙여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두 벌의 외투를 설치했다. 원래 2011년 리스본 디자인 비엔날레 EXD’11을 위해 주문 제작한 이 외투는 몇 가지 흑백 패턴들을 얼룩덜룩 인쇄한 것인데, 이는 1984년식 매킨토시 컴퓨터의 저해상도 흑백 비트맵 화면으로 다양한 색조의 회색을 표현하기 위해 맥 페인트 프로그램에 내장되었던 기본 패턴들을 조합한 것이다. 하얀 바탕 위에 흩뿌려진 충분히 작은 검정색 점들의 집합은 회색으로 간주된다. 이는 초창기 컴퓨터 그래픽뿐만 아니라 망점 인쇄와 에칭, 심지어 목탄 드로잉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오래된 규칙이다. 흑백이 회색이 될 때 형태는 색조로 용해된다. 물론 2012년의 시점에서 그런 부정형의 회색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래였다. 큼직큼직한 흑백 패턴들은 노골적인 가짜 “카모플라주 패턴”을 이루면서 자신을 요란하게 과시했고, 어린이용 물감 색깔의 알록달록한 스티커로 자신을 치장했다. 그러나 미래는 아주 가까이 와 있었으니, 슬기와 민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에 오르던 2014년에는 이미 맨눈으로 도저히 입자를 식별할 수 없는 아주 고운 회색이 당당하게 검정색과 흰색을 경계를 잠식하며 지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이 회색은 <회색 편지지>라는 여러 장의 종이로 구현되었다. 눈을 간지럽히는 미세한 보안 패턴들이 균질한 회색을 이루며 지면을 자글자글 채우고 있다. 그것은 글자를 숨겨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글자가 성립할 수 없게 된 어떤 새로운 평면 또는 시선의 도래를 알리는 듯하다. 이 회색은 한편으로 하얀 바탕 위에 가느다란 검정색 글자들이 얼룩 없이 고운 회색을 이루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타이포그래피의 오랜 전통을 상기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래픽적인 것이 정보 값을, 기능을, 급기야 형태를 상실하고 한 덩어리로 뭉개져서 그저 빈 칸을 채우는 잿빛의 지저분한 질료로 되돌아간 불우한 상태를 상상하게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녹지 않는 눈 뭉치 또는 백색의 금속 배지에서 애써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의외의 가능성에 대한 느슨한 기대라기보다 차라리 작은 결의에 가깝다. 농담과 아이러니와 무심함에 대한 결의. 여기서 무언가 읽어야만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읽어냈으면 한다.
윤원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