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지금(博古知今): 남쪽으로 향한 분청》은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교 예술대학의 “시각 예술 연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선영(프로젝트 7 1/2)과 아스무조 조노 이리안토(반둥공과대학 예술대학)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추진한 조장현 작가의 개인전이다. 그는 멀티미디어 작가로 활동 중인 권승찬씨와 함께 2019년 제5회 인도네시아 현대 도자 비엔날레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에 방문하는 셈이다. 조 작가는 한국 광주 무등도요에서 고려청자 기법을 계승하면서 중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현대 도예가로 이번 기회로 인도네시아에 처음으로 한국의 분청기법을 소개했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조장현 작가는 무형문화재인 부친 고현(古現) 조기정 선생(1939~2007)에게서 고려청자 기법을 전수 하여 현재 광주 무등도요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도자 분야의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 물론 청자는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나, 12세기 무렵에는 고려인들이 중국 것을 능가하는 뛰어난 비색청자(翡色靑瓷)와 상감청자(象嵌靑瓷)를 구워냈다. 이후 13세기 무렵 일본·베트남·타이로 전파된다. – 사라져가는 전통적 방식이 가지는 의미와 명성을 붙잡으려는, 특히 부친이 일궈낸 고려청자 재현이라는 업적을 보존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도자 문화와 현대성과의 융합을 고민한다. 특히 청자 기법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완벽한 재현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정교함과 우아함까지 재현하기가 어려워 현재 소수의 계승자만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전통 도자기 분야 자체가 그릇으로서의 실용성은 상실, 과거의 명성만을 간직한 채 – 백자 정도 그 유의미한 미를 인정받고 있는 실정 – 청자분야에서 계승자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임엔 틀림없다. 또한 옛날의 실용적 그릇이 오늘날의 예술이 되었으니, 역사의 상대성에 취약한 전통적 매체와 방식에 기댄 채 현대적 담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더욱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계승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작가에게 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신중함과 도전은 그의 삶에서 당연히 필요한 태도와 인격적 덕목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이번 전시 《박고지금(博古知今): 남쪽으로 향한 분청》에서 다양한 분청기법을 보여주면서, 철재로 무늬를 그려 넣거나 목이 좁고 긴 청자 병(bottle, 甁)과 다기세트 등 ‘두병’ 시리즈 및 ‘청자철채변형’ 시리즈를 선보였다. 완벽한 계승의 상감청자가 전시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작가의 기술적 미흡함도 있겠지만, 신분사회가 사라진 지금 당시 귀족의 그릇으로서 기품이나 아우라를 드러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 아니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현대미술을 전공한 조장현 작가도 완벽한 계승을 증명하기보다는 분청기법에 관한 관심과 현대적 응용으로 본인의 작업을 생산하고 있기에, 이번 전시는 한국 도자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남쪽으로 향하는 분청”을 위한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되었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얇게 그릇을 굽는 시도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흙도 가마 온도도 모두 다른 환경에서의 고려청자 덤벙 기법테스트는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이어질 프로젝트가 그래서 더 기대됩니다.”라고 오선영 기획자가 밝히듯이, 덤벙 기법은 – 어두운 성상을 가진 그릇들을 백자처럼 하얗게 만드는 한국의 독창적인 도자 장식기법(제작기법) – 장인정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술임은 틀림없다. 한국에서도 전라도에서 도자 르네상스가 피어나길 기대하면서 지역문화 발전에 전략적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작년 자티왕이 현대 도자 비엔날레(2019)에서 작가는 환경의 다름으로 온전한 청자를 구워내지 못했다 한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에도 뻗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계획된 워크샵 같은 이벤트를 온전히 추진할 수 없었다. 흙 상태와 가마, 그리고 철재와 염의 비율 등 도자 작업이 환경과 조건에 민감하다는 것과 일정부분 우연성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일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한국과 인도네시아도 다른 환경 조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결과이고, 이 결과를 자연스럽게 차이에 대한 논의로 접근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두 번의 전시 기회가 영감과 작업의 드라이브를 만든 듯, 작가의 최근 작품은 전통성을 기반으로 목을 과장되게 길게 뽑거나, 또는 목이 두 개 있는 병 모양의 변형을 선보인다. 이는 빚기도 힘들지만 굽는 과정에서도 온전하게 구워져 나오기 쉽지 않은,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흙, 습도, 온도, 공기, 가마가 모두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한국의 분청을 만드는 과정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이주하여 사는 사람의 모습을 닮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작년 자티왕이에서 제작한 분청자는 환경의 다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 깨지고,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무척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있다. (…) 전시 제목 “박고지금(博古知今)”은 중국의 사자성어로 옛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오선영 (프로젝트 7 1/2), 전시 도록 중 일부 발췌.
그리고 이번 전시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12~13세기를 거슬러 분청기법을 기억,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인도네시아가 도자 비엔날레를 5회나 개최할 만큼 예술적으로도 도자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도자예술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그들이 도자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더운 동남아시아에서 가마의 존재는 상상이 안 가는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일종의 합리적 의심으로, 동남아시아를 과녁으로 한 일본의 경제적 진출로 그들의 식문화와 관련된 도자 그릇 취향이 인도네시아에 이식되었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은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최대 규모로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명품 도자기 OEM 공장이 천연 원료를 사용하여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십칠 팔세기를 건너뛰어 도자의 씨앗이 인도네시아에 뿌려져 산업적 목적으로 도자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반면, 이러한 전시는 인도네시아의 한국의 산업진출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으로, 이번 전시가 문화의 우월함과 진출의 산업적 진출의 정당성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현지사람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해준다는 것을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제국주의시대에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고, 아무리 포스트-콜로니얼논의로 따져보아도 윈-윈(win-win)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로 읽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고 2014년부터 현대미술을 다루는 ‘프로젝트 7 1/2’를 시작한 대표 오선영은 이러한 도자 교류를 준비하기 위해 2015년 한국 도자재단에서 주최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교류 큐레이터로 국제 도자 학술 포럼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그는 2019년 인도네시아 현대 도자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로서 광주의 조장현 작가와 권승찬 작가를 추천하고 예산은 물론이고 이들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데 여러모로 힘을 쏟았다. 기획자는 비전공자 콜렉티브 그룹인 자타왕이 아트 팩토리에, 상당히 배타적인 한국 전통 공예계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현대 도예가, 조장현을 소개함으로써 서로 자극받는 부분이 있길 바랐다고 한다.
“조장현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그는 도자 전문 학습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아버지 어깨너머 배웠고, 10년 넘게 혼자 자신이 습득한 작업을 연마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한국 도자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통 도예라는 점과 도자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그래서 그에게 아주 작은 기회라도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기길 바랐습니다. 인도네시아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교류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예술가 집단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루앙루파와 함께 카셀 도큐멘터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한국 미술계가 생각할 지점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기획자 인터뷰에서)
또한 그는 전시와 강연 및 워크숍 등을 조율하고, 반둥 외에 다른 도자 지역 리서치 및 현지에서 도자예술학교 설립이 추진 중인 만큼 이를 위한 사전답사 등을 진행하였다. 이미 프로젝트 이전부터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리서치, 특히 인도네시아 사회의 변화와 변동을 가져온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있고, 한국과 유사한 것으로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론을 대두시키면서 상호 콘센서스(consensus)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옛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전시명 ‘박고지금’은 콘센서스가 있는 상황에서 한 문화의 전통을 널리 알리면 오늘날의 일도 공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고 의미로 응용해도 좋을 만하다.
기획자가 예술교류를 통해 의도하는 사회적 관점에서의 담론은 이러한 이벤트가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하느냐의 여부일지 모른다. 쉽게 말하면, 인도네시아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류가 예술적 경험을 증진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지속적인(on-going)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으며, 교류 기간에 예상치 못하게 작업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일회적 이벤트가 모두 담을 수 없는 지점까지의 보완과 과정 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비적 상황을 남겨놓아야만 했을 것이다. 모든 교류가 얼마나 형식적인 것과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지는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는 요즘, 그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이 지속할 수 있고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문화교류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것은 관점 차이이다. 한국 광주지역에 소개된 조장현 작가의 전시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반응이 존재한다. 구체적인 전시내용이나 현지 관람자들이 반응 등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조 작가가 “한국대표”라는 점이나, “광주를 연고로 활동 중인 한 도예가의 전시가 현대미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로 드러난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라는, 또한 “이번 전시와 강연, 워크숍은 한국 도자의 역사와 전통을 현지 젊은 세대에 널리 알리고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발판을 놓는 뜻 깊은 시도가 될 것”이라는 뻔한 단어 선택이나, 국가교류에 대한 낡은 표현 정보로 일관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많은 기사가 있었다. 이러한 홍보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필요한 것이고, 더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프로젝트 7 1/2’는 2014년 서울에서 시작해서 여러 지역을 거쳐 2016년부터 인도네시아를 기점으로 ‘예술을 통한 인류학적 탐사’를 해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선영 대표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의 인지 과학이나 구조주의적 연구, 또는 타 문화권의 신화를 해체하는 지점이 아닌 “예술 경험의 관점이동”이라는 사회인류학적 문제의식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류가 다른 사회문화 간 시공간의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만남으로, 프로젝트 7 1/2가 만남의 전후 비교를 통해 상호차이 및 관계 변화를 살펴보고자 하는 지점을 통해 포스트-콜로니얼리스트의 관점을 넘어서고자 한다. 다만 이러한 교류들은 기간의 문제로, 또는 초반 다른 문화적 바탕에서의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왜곡의 문제로, 또는 프로젝트의 완전성, 온전성 등등의 모든 순간마다 여러 현상을 판단, 관리하는 방법론과 가치를 고민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7 1/2의 앞으로의 행보와 함께 오선영 기획자의 다음 스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글.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