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15년 12월 12일 – 12월 19일
장소: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지하 1층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하상철 작가는 2015년 7 1/2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문래동 지하 공간을 작품을 보이기 위한 쇼케이스 개념의 갤러리 공간이 아닌 ‘작품을 기능하게 하는 오브제’로 전복시킨다.
2015년 7 1/2 프로젝트가 진행된 공간은 서울 문래동에 철공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며, 올 한 해 동안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이곳의 주변에서 진행되었다. 전시라는 것은 미술(예술) 작품을 보이는 장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시’라는 ‘형식’이 동시대 현대미술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전시가 갖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반복하여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하상철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 통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하상철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전시 공간을 작업 도구로 해석하고, 특히 이 곳 7 1/2 프로젝트 공간이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전시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장소적 특성상 어떠한 이유에서건 이 곳의 원-주민들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만 같은 문래동의 7 1/2 공간 자체를 자신의 작업을 위한 하나의 오브제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듯 본 프로젝트에서 작가에게 주어진 재료는 ‘공간’이다. 하상철 작가는 이 공간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성을 재료로 활용한다. 먼저 공간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 전기의 흐름을 제어한다. 그리고 울림통 같은 공간에서 발생되는 사운드를 이용한다. 하상철은 공간의 전기 흐름을 코딩을 통해 국제모스부호 규약에 따라 변환된 SOS신호로 재조직한다. 재조직된 전기의 흐름은 공간에 설치된 조명 기구를 이용하여 • • •(S) – – – (O) • • • (S) 신호를 만들어낸다.
하상철 작가는 결과적으로 문래동의 7 1/2 공간을 ‘전시장’이 아닌 자신의 작품으로 기능하게 만든 것이다. 7 1/2의 공간 천장에는 작은 구멍이 있으며, 이 구멍은 1층의 ‘크로바금속’이라는 사업장의 입구 바닥과 연결되어 있다. 즉 지하 공간(7 1/2 공간)의 천장과 지상 1층(크로버금속)의 바닥을 관통하는 구멍이 있는 것인데, 이는 마치 땅굴에서 잠시 지상을 염탐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기도 하고, 탱크 입구 모양과도 닮아서 언젠가 둔갑하고 있는 탱크가 이 곳 땅 속에서 튀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어찌되었건 이 구멍을 덮고 있는 철판은 1층 크로버금속 영업시간 동안에는 온전히 보이지만, 영업이 종료되고 셔터문이 내려지면 바닥 철판은 셔터문에 눌려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바깥에서는 셔터문에 가려지지 않은 철판의 반 만 보인다. 이 곳에 왜 이런 구멍이 있는지, 그리고 그 구멍이 왜 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수년 간 이곳 지하는 그 구멍을 타고 내려오는 매연과 먼지가 가득 했고, 바깥에서 나는 소음이 이 곳을 통해 들어와 지하 공간에서 울려 퍼졌을 것이다. 이와같은 공간의 물리적 특성과 지하 공간의 전기 흐름을 제어하는 하 작가의 이번 작업은 SOS 신호로 재조직된 전기는 조명과 함께 지상으로 연결되는 천정 구멍에 설치된 철판을 물리적으로 강타하게 되며, 거기서 발생되는 사운드는 공간의 울림을 통해 지하 공간을 방문한 관객들에게 뿐만 아니라 길 가는 누군가의 귀에 전달된다. 그리고 하나의 오브제로 전환된 공간은 이제 반복된 신호를 내보낸다. SOS 라는 내용 없는 메시지는 어둠과 빛, 그리고 침묵과 소리를 대립시켜 공간 자체를 형식화한다. 그런데 수신자는 누구인가?
전시 제목인 ‘낸’은 컴퓨터 표준 자판에서 영문 SOS(정확히 영어 소문자 ‘sos’)를 영문으로 변환하지 않은 한글로 놓은 상태에서 입력했을 때 나오게 되는 문자 조합이다. 그리고 이 문자의 조합은 우연히라도 한글에서 그 어떤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오타가 된다.
조난신호인 ‘SOS’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긴급구조요청을 위한 신호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SOS는 어떠한 뜻도 담겨 있지 않은 기호라는 점이다. 또한 통신수단의 발달로 오늘날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은 모스부호가 있는데, SOS는 바로 모스부호에서 나온 기호인 것이다. 모스부호가 발명된 후 사용된 첫 번째 조난신호는 ‘CQD’ 이다. (불어 ‘sécurité’ 의 줄임말인 ‘sécu’ 의 발음과 조난을 뜻하는 distress가 조합된 기호임) 하지만 CQD의 모스부호는 – • – • (C) – – • – (Q) – • • (D) 라는 형식으로서 긴급상황 시 이것을 반복시킬 경우 송신과 수신 모두 어려운 점을 안고 있다.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SOS이다. SOS의 부호는 • • • (S) – – – (O) • • • (S) 라는 형식을 취하며 누구나 기억하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다. 또한 반복되는 이 신호를 통해 우리는 리듬감을 느끼게 된다. 단지 해독하기가 쉽다는 이유에서 생겨난 SOS는 결국 세계 공통의 조난신호가 되었다. 다시 말해, 내용에서 형식으로 전환된 CQD는 사장되었으며,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어버린 SOS는 살아남게 된 것이다.
여전히 ‘SOS’의 의미 없음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Save Our Ship,’ ‘Save Our Souls,’ ‘Send Out Succour,’ ‘Save Our Shelby,’ ‘Shoot Our Ship,’ 그리고 ‘Sinking Our Ship’ 등 다양한 해석을 만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SOS는 실제 뜻 없는 메시지이다. SOS의 오류인 ‘낸’은 다음과 같은 진짜 뜻들이 있다. 한글 ‘낸’은 1)내다: 연기나 불길이 아궁이로 되돌아 나오다. (2)내다: 앞 말이 뜻하는 행동이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말. 주로 그 행동이 힘든 과정임을 보 일 때 쓴다. (3)내다: 쌀, 콩, 팥 따위의 곡식을 팔다. 낸을 영어로 발음하는 대로 쓸 경우; (1)nan: 난(남아시아 지역에서 먹는 납작하고 부드러운 빵) (2)Nan: 여자 이름 (Anne의 애칭) (3)NAN: N-아세틸뉴라민산 nan-: nano를 의미하는 접두사 (4)NaN: 컴퓨터 연산에서 NaN(Not a Number)은 연산 과정에서 잘못된 입력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특히 부동 소수점 연산에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부동 소수점 장치는 음수에 대해서 제곱근을 구하려는 연산에 대해서 이것은 불가능(invalid)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NaN 값을 반환한다. (이상 ‘SOS’와 ‘낸’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리한 내용임.)
만들어진 경우든 그렇지 아니하든 뜻 없는 메시지(언어)는 계속해서 (불)가능한 의미의 지점들을 발생시킨다. ‘낸’은 오류이며, 하나의 기능을 한다.‘낸’으로 전환된 전시 공간은 오류로서, 작품을 기능하게 하는 도구가 되거나 혹은 그것이 본래 오류의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하상철은 사진과 영화(영상)를 공부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시청각매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였다.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상황의 한계치를 하나의 조건으로 삼아 화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매체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현재라는 시간을 고려하며, 동시에 ‘그 다음’에 대한 질문을 매번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시공간이라는 큰 틀 내에서 물질과 형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을 놓고 있지 않다. 공간291(2013)에서의 첫 번째 전시 이후, <무제 (내가 제프 쿤스도 아닌데, 누가 내 전시를 보러 여기까지 오겠어?)> (예술공간자유, 2014) 를 진행하였고, 박승원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ø (공집합)>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5) 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그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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