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15년 3월 13일 – 4월 18일
오픈: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1-5시
장소: 문래동 3가 54번지 일대
<예술적이지만 현실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연극적이면서 정치적인>
기획/글: 오선영 (독립큐레이터)
나는 시장 논리에 의해 생성되는 예술의 가치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예술이 지역과 사회에 어떻게 연결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4년 <7 1/2 프로젝트>를 통한 탐구에서 드러났던 실험적인 요소들을 올해에는 더 확장시켜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2015년 <7 1/2 프로젝트> 탐구 과정의 결과물은 전시, 퍼포먼스,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 형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올해 <7 1/2 프로젝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기능적인 불협화음》이며, 이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다양한 연결 프로젝트들이 문래동 철공소 단지 내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2015년. 철공 업체 밀집 지역, 문래동 3가 54번지 일대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한국 산업의 경제발전 태동기인 1960년대부터 소규모 철공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단지이다. 당시 지어진 철공소 건물들과 공장들은 2015년인 현재까지도 그 기능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으로 문래동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현재 예술 단지의 성격도 지니게 되었다.하지만 문래동은 마찬가지로 예술가가 많다고 일컬어지는 성수동이나 연남동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며, 재개발되는 형태와 속도 또한 위에 언급된 지역들과 비교하면 사뭇 이질적이다.
나는 문래동이 가지는 이러한 독특함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존재하고 기능하는 철공 업체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곳은 아직까지도 산업의 현장이고, 노동의 현장인 것이다. 다른 예술 단지에서 나타나는 모습들, 예술가들의 힘을 빌어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키고자 하거나 유행을 좇는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를 이곳에 전파시켜 수익을 챙겨보고자 하는 움직임들은 문래동에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좌절되고 있다. 실제로 성수동이나 연남동을 떠올리며 이곳을 소위‘핫 플레이스(hot place)’라 생각하고 우리끼리 통하는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지칭하자 – 을 지향하며 이곳으로 이주했던 이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부동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요즘 월세가 많이 올랐다고 말한다. 여타의 철공소 골목들과 대비했을 때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고정 수익이 없는 이들에게는 특히 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들이 고정 수익이 없는 예술가이든, 철공업체에서 소일거리를 받아 하루 벌이를 하는 일용근로자이든 말이다.
나의 생각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문래동으로 예술가들이 이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예술가들이 공존함으로 인해 파생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실재와 허구를 교란시키는 해체된 패션쇼
2015년 첫 번째 프로젝트인《기능적인 불협화음》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유지되는 전통적인 패션쇼의 형식을 차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패션쇼는 19세기말 산업화와 함께 기성복이 대량생산되고, 이렇게 제작된 옷을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패션쇼라는 틀을 해체시키는 방식을 취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감각 영역을 확장시킬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혹은 바깥에서) 예술을 지향하고 모방하면서 놓치고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의 시작이다.《기능적인 불협화음》은 패션, 영화, 음악, 미술을 함께 수용하기에 나(기획자)는 각 장르의 예술가들을 초대하였다. 초대받은 예술가들은 본 프로젝트 주제에 따른 각자의 역할도 전달 받게 되는데, 이는 함께 게임을 하기에 앞서 게임의 법칙을 전달 받는 것과 유사하다. 각자의 역할을 전달받은 예술가들은 그에 맞는 작업을 한다. 본 프로젝트 안에서 각 장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함께 기능하기 위해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감각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며 각자 개별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개별성은 관객들의 관람 경험으로부터의 파편적 감각이 되어 개개인의 기억 속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은 결국 해체된 패션쇼이자 영화이자 우리의 현실 속 모습이다. 프로젝트 투어에 참여하는 관객들은 관객인 동시에 해체된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이기도 하고 영화 속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며 또한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독특한 투어 행렬을 지켜보는 철공소의 근무자들 역시 투어 행렬의 입장에서는 낯선 타자이며 해체된 패션쇼에 출연하는 모델로 여겨질 수 있다. 타자에 대한 관찰은 영화 속 프레임의 내화면과 외화면을 오가는 중요한 키가 되는데, ‘ 나’에게 ‘타자’는 실재와 허구를 교란시키는 매개자가 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촉발한 혼란스럽고 낯선 상황 속에서 모두- 참가자와 非참가자-는 원치 않게 공존하며 끊임없이 타자를 인식하고 의식함으로 인해 긴장감은 극대화된다.《기능적인 불협화음 》을 통해 우리는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정보들로 인해 미처 감각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문래동 철공소 단지의 실제를 짧고 깊게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현실을 재현한 모방의 예술 작업이 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실험영화감독 김숙현이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기 위해 쓴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영화 스크립트〉(2015)의 지시에 따라 주연배우이자 투어 가이드인 이계영이 관객들을 이끌고 영화 속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영화 스크립트>(2015)는 수행적인 시나리오이다. 감독의 역할을 하는 김숙현(실험 영화감독)과 주연배우를 맡은 이계영은 관객들과 함께 문래동 54번지를 걸으면서 영화가 찢기고 해체되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관객들은 자신의 참여도에 따라 영화의 조연 혹은 엑스트라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관객들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스크립트 안의 형식적 요소 그 자체가 된다. 왜냐하면 영화에 참여하며 시도하게 되는 낯선 기행은 그 기행의 주체인 관객에게 움츠러듦과 호기심을 동시에 선사하는데, 이는 영화에 작용하는 여러 요소들- 선별된 시선으로서 카메라의 렌즈와 움직임, 어지럽게 편집된 몽타주, 인상적으로 녹음된 사운드 레코더, 시선을 포획하는 프레임의 안과 밖, 시야 안에 배치된 미장센, 직조된 수많은 스토리-을 체화(體化)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낯선 타자로서 문래동 안에 참여(감각)하는 일은 해체된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었을 때와 유비관계를 이루고, 이에 스크립트는 분해된 형식을 강조하는 불협화음으로서 관객들과 함께 수행함으로써 완성된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맞춤 작업복>(2015)은 문래동 철공소 공장 단지 내에 있는 철봉 재단업체 ㈜어진에서 근무하는 여섯 명의 근로자들과 그 주변 공장 단지의 일상《기능적인 불협화음》프로젝트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시작된다. 기획자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박혜수에게 여섯 명의 근로자들(모델들)의 각자 치수에 맞춘 작업복 디자인과 제작을 의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보편화된 치수에 맞춰 좌우 완벽히 대칭으로 생산된 옷을 입고 본인이 비대칭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맞춤 작업복〉은 본인의 몸에 맞는 비대칭 치수에 따라- 하지만 그 비대칭이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제작된 맞춤 작업복을 입었을 때 과연 어떤 감각을 가질 수 있을지 탐구한다. 맞춤 작업복을 입은 모델들은 그들의 일상을 관객들에게 보인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즉흥 연주>(2015)는 첼리스트 남유미와 퍼커셔니스트 조인숙의 연주 퍼포먼스이다. 클래식에서의 불협화음이란 음조, 음정, 박자를 모두 어긋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연주하는 공간에서 감지되는 모든 소리를 감각하고, 인지되는 감각에 맞춰 음을 내기를 시도한다. 본 프로젝트에서 이들이 악기를 “연주한다”는 행위는 타 장르와 융합되어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주변 소음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연주자에게는 금기시되는 일로, 탈 장르를 시도하는 행위이다. 나는 이러한 즉흥연주가 ‘현대음악’으로서 음악이라는 장르 안에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그 모호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퍼포먼스는 그 시간 함께 존재하는, 즉 기능하는, 가능한 모든 주변의 요소들을 감각하고 그것을 소리로 재현하고 모방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해체된 자위적 조치>(2015)는 손종준 작가가 그간 <자위적 조치 Defensive Measure>라는 주제로 보여온 여러 연작을 해체시키는 작업이다. 일종의 무장해제와도 같다. “Defensive Measure”는 미군의 군사 용어로 오키나와에 있는 미 해병대가 한반도 유사시에 내리는 행동지침인데, 작가는 그 용어를 작품 제목으로 차용하였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에서는 감각하기 위해, 또 타자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 ‘나'(작품)을 무장 해제시킬 것을 작가에게 요구한다.
유지은 작가의 <몽상충돌>(2015)은 현실과 이상 사이 숨겨 놓은, 억압된 욕망들을 종이 위에 펜으로 그려나간 작업이다. 작가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작품 이미지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감각될 수 있을 것인지가 관람의 핵심이다.
<7 1/2 프로젝트>에서 기획하는 각각의 프로젝트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위 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일 수 밖에 없으며, 탐구는 지속된다.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이어 두 번째 프로젝트《수분》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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