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2: 암호적 상상>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 ‘성찬경+성기완’(5월8일~6월4일)은 시인 성찬경(1930~2013)의 미술계 데뷔전이다. 여든 넷, 그것도 타계 3년 뒤이니 아주 늦은 나이다.
그 가능성은 3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전 ‘응암동 물질고아원’(2월25일~3월9일, 백악미술관)에서 보인 바 있다. 이때 시인이 주워 모은 잡동사니, 특히 쇳조각을 잇고 조합한 정크아트 작품들이 전시됐다. 시인이 버려지거나 죽은 시어에서 생명을 찾아온 점에서 시인의 평생시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는 시인의 정크아트 작품 외에 그의 ‘1자시집’ 《해》에 수록된 103편의 시와 18편의 ‘나사 시’가 전시되었다. 여기에 시인의 녹음육성과 그의 아들이자 시인인 성기완의 음성에서 뽑아낸 자음과 모음을 합성해 만든 103편의 1자시가 무한반복 되는 사운드아트도 더해졌다. 그러니까 아비의 시와 정크아트에 아들의 사운드아트가 부가된 ‘부자전’쯤 될 터이다. 이를 두고 성찬경의 데뷔전이라니? 좀 지루할 테지만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성찬경은 다시 말하건대 시인이다. 1956년 등단 이래 반세기 동안 ‘밀핵시’를 추구해 왔다. 밀핵은 이미지의 원형질에 해당하는데, 밀핵시는 시어에 최대한의 밀도를 넣고, 문장에 최대한의 무게를 부여함으로써 구현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유리가 병으로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병이다./인간의 수족이다./깨져야 유리는 유리가 된다.//병은 기능이요 쓸모이다./소유의 차원이다./값을 매겨 사고판다.//파편은 무엇이고 그것 자체이다./쇠는 쇠요 구리는 구리요 은은 은이다./존재의 차원이다. 무값이다.//에덴동산이 어디뇨./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편안하게 나뒹굴면 바로 거기지.//산산조각 난 것들이 창궁의 별처럼 모여들어/존엄의 왕좌에서 반짝이고 있다./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다. (‘유리와 병’ 전문)
시인이 추구해온 큰 주제 ‘사물과 존재의 본질과 신비’를 밀도 높은 시어로써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문장으로 구현한 점에서 이 시에는 시업 50년의 비밀이 녹아있다. ‘요소시’는 밀핵시의 다른 이름이다.
요소시다./요컨대 바수고 또 바수어 끝으로 남은/사금파리 조각을 모은 시다./누군가가/결국 요소시는 “미니멀리즘 계열이군요” 한다./일리 있는 말이다./그러나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모든 장식이 가짜 황금인 이 시대/모든 말이 부도난 어음인 이 시대/모든 은둔이 쇼인 이 시대/모든 아름다움이 목졸리는 이 시대/무시무종무염(無始無終無染)으로/반짝이는 것은 요소뿐이다./그러니 요소시다. (‘요소시’ 전문)
모든 말이 부도난 어음이고 모든 아름다움이 목 졸리는 이 시대에 ‘무시무종무염(無始無終無染)’ 즉 절대치로 ‘반짝이는 것’은 꾸밈이 일체 배제된 2자로 된 동사와 명사였다.
먹고/자고/자고/먹고//깨고/먹고/먹고/깨고//가고/먹고/오고/먹고//녹고/하고/하고/먹고//먹고/세고/재고/벌고//벌고/하고/쓰고/먹고//밝고/먹고/지고/먹고//먹고/하고/하고/자고//먹고/삭고/삭고/가고 (‘먹고’ 전문)
사랑/슬기/사람/이슬/염통/기름/가슴/나무/달래/소금/바람/마을/나라/가을/소리/누리/번개/피리/사발/가락/마디/즈믄 (‘사랑’ 전문)
시 ‘먹고’가 동사의 결구로써 생노병사의 스토리를 갖는다면 명사로 된 ‘사랑’은 스토리마저 해체해 버렸다. 시인은 ‘팔레트 걸기’에 비유한다. 물감들을 섞어 칠해서 탁하고 지저분한 결과를 얻느니 차라리 팔레트 자체를 보여주자는 전략이다. 밀핵을 지향한 시인은 그 관성을 몰아붙여 ‘2자1행시’에서 ‘1자1행시’로 나아간다.
해/달/별/땅/빛/김/참/물/불/흙/넋/피/숨/몸/맘/말/잠/얼/꿈/범/솔/멋/쌀/땀/일/술/삶/메/똥/뽕/님/쇠/눈/손/곰/발/밭/글/코/뺨/뼘/귀/입/벗/집/끈/꽃/돌/책/때/곳/옷/신/낮/밤/씨/봄/틀/나/너/애/넘/붓/실/솥/독/못/춤/품/개/놀/굴/울/칼/풀/칡/톱/꾀/샘/살/털/팥/콩/돈/벼/소/뱀/알/꿩/배/닭/씨/밥/싹/셋/떡/숲/감/철/비/흠/끌/터/몬/쌈/엿/멍/새/활/벌/뿔/꿀/뼈/젖/틈/혀/내/끝/힘 (‘해’ 전문)
시인의 궁극을 향한 열정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1자시’에 이른다. 제목과 본문이 꼭 필요한가. 글자 하나가 제목이요 본문인 ‘절대시’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시의 존립요건을 잃어버린다는 것. 즉, 시는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러자면 ‘A=B’라는 구조가 필요하다. 시인은 A항에 텍스트를, B항에 여백을 둠으로써 모순을 푼다. 시인이 미술의 경계지대로 나아간 것은 이처럼 운명적이다.
이번 전시는 시인이 작고하면서 작동하기를 멈춘 힘의 포인트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시인이 더 오래 살았다면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 성기완이 아버지의 1자시를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했다가 재합성한 작업은 아비가 1자시에 남긴 암호에 대한 해석인 셈이다. 분자에서 원소단계로 나아가기. 하지만 원형질적인 시어를 추구하다 1자시에 이른 시인이 시어가 의미를 잃는 원자 수준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그 점에서 성기완의 작업은 아버지와 연속인 동시에 단절이다.
시인이 1자시를 발표함에 여백을 동반한다고 말한 바, 시집에서는 펼친 면 중 왼쪽면 구석에 작은 글씨의 시어를, 오른쪽 면 아래에 짤막한 설명을 다는 방식을 택했다. 전시 기획자 오선영은 시인이 살아서 당신의 데뷔전을 꾸린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착안한다. 전시장 한쪽 벽면 좌상단에 ‘달’ 한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바닥의 대척점에 낡은 4기통 엔진 두 개를 세로로 포갠 시인의 정크아트 작품을 놓았다. 시인이 정크아트 작품에 제목을 붙였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으니 기획자의 선택일 터이다. 키높이에서 본 8개의 구멍이 눈썹에서 쟁반으로 모양을 바뀌는 달의 변태와 흡사한 것이 벽면의 ‘달’과 조응한다. 이 지점에서 시인의 정크아트는 설치작품으로 변하고 미술의 경계에 멈췄던 시인은 설치미술가로 거듭난다. 데뷔전이라 일컬음은 바로 여기서 말미암는다.
시어들은 전시장을 벗어나 골목길 곳곳의 벽과 바닥으로 퍼져나간다. 거울 옆에 ‘낯’, 수돗가에 ‘샘’, 시멘트 벽에 ‘흙’, 문틀 창틀 옆에 ‘칸’, 뜯어져 빛이 들어오는 천장 옆에 ‘숨’, 화단 옆에 ‘벌’, 옛 우물 옆에 ‘움’, 건물 모서리에 ‘터’, 통신케이블 위에 ‘귀’, 상가 사무실의 부서진 기타 옆에 ‘신’ 따위다. 의도적으로 배치된 시어들은 지번표지, 가게 간판, 문패 등의 문자 설치물, 금연구역, 임대, 안전제일 등 문자 부착물 사이로 스며든다. 이쯤에서 전시는 시와 미술의 경계에서 미술로 나아가 미술이란 무엇인가란 본질적인 질문에 이른다. 시인이 평생 시란 무엇인가를 천착해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획자 오선영이 시인의 입을 빌었다는 게 옳다. 미술작품은 미술관이나 화랑의 화이트 큐브에 걸려야 하는가. 비싼 값에 사고팔려야 좋은 작품인가.
전시장은 종로구 장사동 67번지(종로22길 15) 송복은장학회 ㄷ자 한옥의 한 귀퉁이. 빼곡한 전기전자 부품상가 한가운데서 낯설다. 이곳은 세운상가와 함께 ‘IT한국’을 연 산실이다. 이에 앞서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고물자동차, 거기서 뜯어낸 부품을 사고파는 곳으로 첫 국산자동차인 시발택시를 낳은 배후지였다. 전기전자 부품가게들 틈에 베어링 등 기계부품 가게가 박힌 것도 그런 때문이다. 한옥건물 처마 밑, 창문유리, 출입문 유리 등에 소개되는 시인의 나사시 연작 18편이 새삼 의미를 얻는다. 1979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작이기도 한 나사 연작시는 시인의 ‘물질고아원’의 시적, 사상적 토대이기도 하다.
단편(斷片)을 이어 문을 쌓는 나사. 너 종지부. 너를 또 잇는 나사는 없구나. 세발자전거도 <바이킹 1호>도 너로 하여 한 단위가 된다. 단순 유현한 결합의 원리. 이제 길에 버려진 고아 나사여. 흘러간 당적(黨籍) 번호 cp1038. 나선(螺線) 홈이 문드러진 파쇠의 파편. 네게 오늘 전신(轉身)을 주마. 너를 오브제로 부활시키마. 너는 이제 정신의 무리에 들라. 너는 이제 왕자. 너로 하여 쌓인 문명을 너를 쓰다 버린 문명을 싸늘히 비웃어라. 나사여. 나의 금붙이여. (‘나사 2’ 전문)
임종업 (한겨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