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7년 7 1/2 프로젝트를 계획하기에 앞서 드는 생각

어느 도시를 가던 도착하는 순간 그 도시의 냄새가 가장 먼저 코끝을 자극한다. 그리고 주변 환경과 함께 스스로 그 도시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온 신경이 곤두선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점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네시아 북자카르타의 빈민촌에 대한 뉴스가 귀에 들렸다. 북자카르타에는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을 당시 지어진 유럽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너무 오래되어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현재 대부분이 철거 중이거나 빈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비교해 설명하자면 예전의 미국 뉴욕의 할렘가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곳에 찔리웅 천(川)이 흐르고, 강가로 낮고 좁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마을을 깜풍(Kampung)이라고 하는데, 깜풍 통골(Kampung Tongkol), 깜풍 크라푸(Kampung Krapu) 그리고 깜풍 로단 (Kampung Lodan) 이렇게 세 개의 작은 마을로 천(川)을 따라 빈민가가 구성되어 있다. 그중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깜풍 통골에 독일에서 온 작가들이 마을 주민들을 위한 작음 쉼터를 마련하고 있었다. 크리스(Chris Meighan), 마커스 (Markus Lohmann), 데이비드(David Rauer) 그리고 크리스틴(Christiane Dörken)이 참여하는 Freizeit dan sejenis이다. 이들의 프로젝트가 2주 동안 진행되는데, 실제로 작가들이 2주 동안 통골 마을주민의 집에 함께 거주하면서 작업을 하게 된다. 작가들의 작업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나 설치 보조 인력도 마을의 젊은이들이 맡는다. 참여 작가들은 이들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그리고 임시 마을 회관(실제는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무스크)에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작가들은 작업 제안 내용을 그들과 공유한다. 마을 주민 전체의 의견을 묻고, 반영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 여러 시민단체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해 놓았다. 이 마을은 자카르타 시의 도시 재개발 계획이 확정되면 없어지거나 새 건물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확정할 수 없다. 그 과정 중 빈민촌에 설치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얼마나 이곳의 주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지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함께 결정하고 만들기 때문에 그 가치와 의미가 분명히 그들 가운데 존재하고, 완성된 작품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에서 주최 주관하는 행사들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작품을 제안하고 작품이 설치되는 과정에 주민들과의 협의 과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나 주관처의 공무원들과 같은 행정 담당자들 혹은 전문가 집단의 운영위원, 시 의회 의원들이 판단하는 심의가 전부이다.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공공 미술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삶 속에 예술이 스며든다’는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예술이 삶 속에 스며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물음을 던지고 싶다.

내가 경험했던 미술은 아무리 내가 큐레이터로서 예술가와 일반 대중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자 했다고 강조하여 설명한다 하여도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했듯이 한국 현대 미술도 끊임없이 서구의 것을 닮고자 했고, 그 노력만큼 많이 닮았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닮고자 노력했을까? 한국 현대 미술 작품이 국제 미술 행사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상품 가치를 지닐 수 있고, 또 그만큼의 가격이 형성되어 유통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작품의 상품화이며, 작품 가격의 상승이 예술가들의 최종 목표인 것일까? 나는 이런 한국 현대미술계의 현실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서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 질문을 가지고 7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자 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지식이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오히려 지식과 언어를 통해 삶을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 우리의 삶 속에 단순히 공존하는 무엇, 그 어떤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공명할 수 있는 존재이며, 공명할 때 비로소 그 예술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야 큐레이터로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게 되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세로부터 독립한 날이 1945년 8 월 15 일, 8월 17일로 이틀 차이다. 이후 산업, 경제의 발전은 한국이 인도네시아 보다 훨씬 앞섰고,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식어가 한국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빠른 경제 성장 속도로 인해 우리가 놓친 것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아직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도시화 과정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역들을 리서치 하면서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생각함과 동시에 지금 우리는 예술이라는 작은 범주 안에서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반성적인 시각을 갖고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인도네시아 리서치를 통해 과거의 시간들을 반추하게 되었고, 또 이를 바탕으로 2017년 7½ 프로젝트를 기획할 예정이다.

 

2016년 12월 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오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