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글로벌 도시가 되다.
김해는 국내외 현대미술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도시는 아니다.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몰려 있거나 예술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서 작가들에게 인기 높은 장소로 여겨져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김해평야’를 떠올렸다는 큐레이터의 고백처럼 김해는 아직도 타지인들에게 도시와 농촌의 중간쯤에 위치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김해의 현재 풍경은 드넓은 평야를 연상시키는 한가로운 모습이 아니다.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김해시는 난(亂)개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가구공장이 밀집된 주요 거리가 형성되면서 이주 노동자들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해 시장이 최근 글로벌한 역사와 문화 도시로서의 방향성을 천명한 것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김해시의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지평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글로벌 도시’로 급부상한 곳이 김해시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김해에 이주 노동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짧게는 기술과학에 의하여 글로벌 경제의 체제가 가속화되었고, 멀게는 19세기부터 싼 노동력과 부지를 찾아서, 혹은 일자리를 찾아서 국경을 넘나들어온 자본주의 지속적인 흐름의 결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가구 공장 근처에 몰려든 외국인 노동자들과 김해시에 들어선 크고 작은 무슬림 신전, 외국인을 위한 센터들은 19세기 중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inson)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에 등장하는 파리와 런던의 암울한 도시 풍경을 연상시킨다.1) 즉, 산업혁명 이후 도시를 둘러싼 물리적, 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말이다. 디킨슨의 『두 도시 이야기』 속 도시의 상황에서도 암시된 바와 같이 세계화는 150년이 지난 현재 그 열매뿐 아니라 어두움도 급속도로 전파시켰다. 김해에서도 국가, 문화적인 경계선은 허물어졌고 도시의 정체성도 새로운 가치관들과 만나면서 변화하고 있다.
2014년부터 지난 3년간 서울의 노마딕 기획 프로젝트 7 1/2을 시작으로, 2017년 8월 서울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루작도시연구(RCUS)와 족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 시각예술 아카이브(IVAA)에서의 포럼을 거치면서 기획자 오선영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뼈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어떻게 유사한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순차적으로 리서치 해왔다.2) 따라서 이번 전시는 기획자의 오랜 연구 관심사에 비추어 보아서, 또한 김해시의 ‘정체성’과 ‘장소성’을 새롭게 접근하는데 있어 매우 시의적절 해 보인다. 언급한 바와 같이 김해시는 최근 이주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글로벌 역사 문화’도시라는 일간 낯설어 보이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18세기 말부터 19세기의 파리와 런던처럼, 20세기 서울과 자카르타처럼 서로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차별화되면서도 유사한 경로를 밟아 왔는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나라의 근대사에서 어떤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고, 어떤 역사가 누락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지금 이 잊혀진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고자 하는가?
7 1/2의 틈새 공간/역사 공략하기
우선 지난 3년간 진행된 7 1/2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살펴보자. 7 1/2는 오선영이라는 독립 기획자에 의하여 시작된, 여러 장소를 이동해서 열리는 기획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기존 미술기관들 중심의 전시기획 행태에 반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레지던시나 대안공간이 등장하게 되었고 특정 주제의 전시를 가지고 공간에 한정되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독립기획자가 생겨났다. 이어 7 1/2는 독립기획자 오선영과 같이 장시간에 걸쳐서 여러 기획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드는 단체, 개인들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독립기획자들의 활동을 위한 경제적 여건들이 더욱 열악해진 상황에서 여러 기획자들이 함께 모이거나 시리즈로 전시들을 기획함으로써 최대한 독립기획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매우 현명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독립기획자들이 특정 장소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장소, 심지어 문화 속 장소들이 점차로 유사한 사회적 이슈(혹은 문제점)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서울과 자카르타의 환경적인 변화나 비평적인 쟁점들이 서로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글로벌화된 금융체계와 다국적 기업은 시시각각 다양한 자원들이 각종 경계를 넘어 오고 가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각종 사회적 변화와 문제점도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매일 신문과 뉴스뿐 아니라 SNS를 통하여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 전 세계인들에 의하여 공유되고 다시금 오프라인 사회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제 교류’가 빈번해지면 질수록 독립기획자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함께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비평적 변화들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제트기를 타고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는 인력들이 늘어나면 늘어갈수록 그들과 비교도 안 되는 적은 임금을 받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전혀 다른 문화, 언어, 종교를 믿는 김해와 같은 곳에 옮겨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네팔의 이주 노동자들의 수도 증가하게 된다. 기획자들이 문화와 국가의 경계에 위치한 흥미로운 틈새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게 된 것 또한 전지구화의 흐름이 일상적인 삶과 환경으로 확대된 현실에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 도시 이야기》에는 아시아 현대사에서 소외되었거나 누락되었던 개인적 서사들이 등장한다. 일찍이 국가적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역사적 인물들의 종말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왜 고향을 떠났고 어떻게 타지에서 살아갔는가? 이들의 오랜 서사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왜 이방인들에 대한 기록은 공식적인 역사적 서술에서 제외되고 있는가? 흥미로운 점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개인적 서사의 주인공들이 20세기 식민주의 역사, 근대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개인적 서사의 주인공들은 여지없이 서로 다른 문화권들 사이를 부유하였던, 아니 그 사이에 외계인과 같이 우연치 않게 떨어져서 한동안 존재하였고 불연 듯 사라져간 인물이나 물건이다. 앙가완의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이야기>는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가서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포로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양칠성(1919-49)에 관한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르완과 살리나의 <통화(通花)>는 1970년대 냉전시대 김일성과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친밀했던 개인적 관계를 상징하는 김일성화(花)를 다루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7 1/2이라는 타이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획자는 7 1/2이 원래 영화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1999)로부터 유래하였다고 설명한다.3) 영화 속에서 실직한 크레이그 슈워츠(Craig Schwartz: 존 쿠삭 분)는 7과 1/2층(7층과 8층)사이에 사무실이 위치한 뉴욕의 한 빌딩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사무실 캐비닛 뒤에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획자에게 7 1/2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분류에 부합되지 않는 틈새의 공간이나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질적인 사회, 미학적 세계, 심지어 타인의 뇌에 비집고 들어가는 통로”이며 그녀의 전시 기획 또한 기존의 분류를 벗어나서 소외된, 이탈된 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서 관객에게 내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자카르타-김해
덕분에 주요 서사의 주인공들은 기존의 역사적 서술에서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기록이나 흔적들 또한 파편과 같이 흩어져 있다. 이에 예술가들은 ‘희미해진 이방인들’의 흔적을 관객에게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관객들은 부분적인 아카이브 자료들로부터 이방인의 삶을 상상하도록 초대된다. 앙가완의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이야기>에서 일본군의 부분으로 동남아시아에 끌려간 조선인 양칠성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죽음을 당면하기까지 나는 산송장과도 같았다….
나는 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하여 따뜻한 감정을 풀어보려 열정을 품었던 시간을 기억해 내려 하였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들 4)
프랑의 철학자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역사적 서술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둘러싼 분류의 체계를 보여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양칠성의 기록이 공식적인 역사적 분류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그를 국제 미아로 만들었던 역사적인 상황으로부터 기인한다. 일본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인이었고 조선인으로 머나먼 동남 아시아에 파견되었으나 연합군의 승리 때 일본군으로서 포로가 되었던 양칠성의 삶은 20세기 아시아 근대사의 격변기 그 자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특정 국가, 문화, 장소에도 속하지 못했던 양칠성의 존재는 전통적인 역사적 분류나 사고 체계에서부터 이탈해 있었기에 역사적 서사나 보존의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서 현재에도 양칠성에 관한 기록이 ‘흐릿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조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점이 아직도 매우 한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저항의 역사는 아직도 우리 땅에 있던 이들에 비교적 한정되어 있고 일제 식민지하에서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양칠성의 삶을 새롭게 추적해야 할 이유를 당면한 과제를 지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국가나 문화적 경계선이 흐릿해진 우리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로서 양칠성의 삶을 통하여 공식적인 역사적 서사와 관점에 비로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전시에는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몸소 두 세계를 오갈 수밖에 없었던 양칠성이나 후융(그의 한국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진바 없으며 허영, 해영, 후영, 혹은 해융 등으로 추측만 될 뿐이다.)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아카이브 작업과 언급한 바와 같이 냉전 시대 인도네시아와 북한의 독특한 교류사가 등장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김일성을 기리기 위한 김일성화가 재정되고 번져가게 된 역사를 다룬 영상 작업 <통화>는 이제까지 남한인들에게는 알려질 수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동남아시아와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를 맺게 되었을 뿐 인도네시아는 1960-70년대 북한과 더 친밀한 교류관계를 맺어 왔다. 덕분에 꽃을 둘러싼 김일성과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일가와의 관계에 관한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도 어떤 역사적 사실이 억압되거나 노출되게 되는 그 경위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정한 사실이 역사적 서사들에서 알려지거나 은폐되는 것은 결국 푸코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기록을 정리, 생산, 혹은 은폐하는 특정한 역사나 사회의 시선을 철저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주요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자국의 역사 속 한국인이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발굴하는데 집중하였다면, 루작의 <저항을 아카이브 하기>와 김해 전시에 새롭게 참여한 믹스라이스의 워크숍 <믹스플롯>은 최근 자카르타, 서울, 김해를 거치면서 산업화된 도시 속 하층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평화롭던 촌락의 사람들이 편으로 갈리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루작의 걸개그림과 자료들은 1970년대 도시화, 1980년대 강남개발 계획, 1990년대 위성 신도시 계획으로 점철되어온 서울시의 과거를 연상시킨다. 최선아는 철저하게 시장논리에 의하여 구획되고 개발되어온 서울의 땅을 확대해서 기록하고 임의적으로 재배치한 바 있다. 아르코 전시에 포함되었던 <서울 1:10,000>는 작가가 서울의 25개의 구와 424개의 행정동을 선택적으로 확대시켜 A4 종이 크기의 블루프린트로 옮겨 인화시키고, 낱개의 청사진 지도를 나무판 위에 이어서 부친 작업이다. 이 새 지도 위에서는 강북과 강남, 구와 동에 따라 존재하는 지역적인 갈등과 편차의 폭이 적어도 지도상으로는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땅은 낯설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나마 특정 정치나 경제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온다. 각각의 칸 속 네모난 땅을 관객은 그저 태초에 주어진 그것처럼 순수하게 읽힌다.
이번 김해 전시에서도 최선아는 서울의 땅을 확대해서 임의적으로 재배치한 것과 유사하게 대형마트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자연풍경 자체가 변해버린 김해의 땅에 집중한다. 그는 <가야토기>와 <경계(들)>에서 김해의 땅 밑에 묻혀진 오래된 유물의 흔적을 다룬다. 가야 토기는 약 3세기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스에키 토기의 기반을 이뤘을 만큼 번성하였으며, 현재는 난개발의 현장에서 쉽게 파괴되고 묻혀져 버릴 운명에 처해져 있다. 이에 작가는 초현실주의의 포토그램을 사용하여 오브제가 사진 인화지 위에서 우연적으로 형태를 드러내듯이 과거 시간의 흔적을 발견, 혹은 발굴해내고 있다.
그러므로 “확장된” 두 도시의 이야기는 서울-자카르타의 예술가, 기획자들의 워크숍으로부터 각자의 숨겨진 역사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 속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교류사에 주목한다. 제국주의로부터 냉전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게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교류사는 공동의 발전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제국주의나 냉전과 같이 각각이 처한 암울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반(半)강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전지구화가 만들어낸 이주 노동자의 현실, 급격한 도시화가 만들어낸 철거의 현장, 아픔의 기억들 또한 국제 교류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해오던 망각의 역사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근대사의 연관관계를 역추적하고 재해석하는 일은 파편화된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사라져간 외계인 양칠성의 존재를 추적해가는 일만큼이나 불완전하고 힘들다. 하지만 7 1/2의 기획자 오선영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이야기가 현재 인도네시아인과 한국인이 기억하고 있는 전두엽에 위치한 교류사가 아니라 뒤편에 숨겨져 있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서사라면, 이 또한 새로운 미학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김해시의 한 부분으로 그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잊혀진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
[1]《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의 역사소설이다. 소설은 산업혁명 이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격동기 근대화된 도시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연인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기획자에 따르면 전시의 제목은 19세기 디킨스로부터 유래하기는 하였으나 소설 속 다른 특정 두 도시의 개념으로 읽히기 보다는 모든 이주민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두 도시’의 의미로 확장해서 사용되었다. 즉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는 장소성과 인간의 유동적인 관계를 강조하고자 ‘두 도시’라는 단어가 인용되었다. 오선영, 저자와의 이메일 인터뷰, 2018년 1월 28일.
[2] 루작도시연구에서의 포럼에 관한 정보는 다음을 참고. www.facebook.com/projectsevenandahalf.
[3] 오선영, 저자와의 인터뷰, 2017년 4월 19일.
[4]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이야기>(2017) 작품 내용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