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구경꾼한테 김해는 초현실적이다. 금관가야 고분 위로 쌕쌕이가 간단없이 날아간다. 시대착오적 대비가 낯설고, 금속성 굉음은 잠자리를 짓누른다.
김해 하면 가야를 떠올리지만 한발 다가가면 가야와 무관함이 드러난다. 거리 조형물, 박물관, 고분 등 옛 가야 영지에 설치된 조형물은 근자에 세워진 표가 난다. 김대중 정부 때 세워진 국립김해박물관. 가야 자취가 풍성한데, 토기와 철기 시대에서 딱 멈춰있다. 1500년 전 신라에 편입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은 가야 유민이 아니다. 55만 시민 대부분은 대규모 공장 유치와 함께 흘러온 외지인이다. 최근 들어 국외 이주 노동자 비중이 커지고 있다. 주거지 역시 산기슭 가야 옛 땅이 아니라 강점기 이래 낙동강 습지를 메워 만든 평지다. 그러니까 오리지널 김해시는 강점기 이후에 형성됐다고 해야 옳다. 키워드로 정리하면 간척, 비행장, 공장, 이주민이다. 김해는 기록을 기다리는 산 표본인 셈이다.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 ll>(김해문화의전당, 2018년 3월8일~29일)는 2017년 7월 21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같은 이름의 전시를 김해로 옮겨온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서울 전시의 김해시 버전, 즉, 테마는 같지만 내용과 형식이 다르다. <두 도시 이야기 ll> 관전 포인트는 바로 장소성이다. 전시가 장소를 달리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 내재된 기획자 의도는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기가 그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 ll>는 애초 계획에 없던 전시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두 도시 이야기>에 일련번호가 붙지 않은 것도 그런 자취다. 전시가 끝난 뒤 출품작 가운데 영상자료, 비디오작품 등 일부는 작가한테 돌려주고 나머지 평면, 설치작품은 폐기됐다고 한다. 문제의 시작과 끝은 그 전시가 예기치 않게(?)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우수전시’에 든 데서 비롯한다. 그 안에 든 전시는 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앙코르 전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두 도시 이야기는 김해문화의전당의 초대를 받았다.
<두 도시 이야기> 김해 버전을 뜯어보자.
우선 참여 작가. 두 도시 중 한쪽 편인 서울을 대표하는 작가로 슬기와 민, 최선아, 믹스라이스가 참여했고, 또 다른 편인 자카르타 대표 작가로 마르코 쿠수마위자야 & 루작도시연구센터, 이르완 아흐멧 & 티타 살리나,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족자카르타),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 & 빌리지 비디오 페스티벌, 포럼 렌텡이 참여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주노동자들(쩐드러 버하두르 타망, 쉬레스터 러매스, 하리 어디카리, 디판드러 아디카리. 셀빠 앙치링)이 공모작가로 전시 일원이 됐다. 서울 전시와 비교하면, 배영환, 임종업이 빠지고, 그 자리는 믹스라이스,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 & 빌리지 비디오 페스티벌과 이주노동자 작가들이 채웠다.
틀(프레임)은 어떠한가. 서울 전시가 한국의 수도 서울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맞세웠다면 김해 전시는 한국의 수도 서울과 경상남도 김해시, 또는 한국의 김해시와 인도네시아 작은 마을 자티왕이를 맞세운다. 작가를 빼고 채우는 것과 조응한다. 빠진 작가(배영환, 임종업)는 더덜없이 서울 맞춤형이고 새로 채운 작가는 김해 전시를 위한 확장형이다. 이주노동자로써 김해를 깁고 더한 만큼 서울의 색깔을 덜어내는 형국이랄까. 더불어 김해의 인도네시아 맞수에 해당하는 자티왕이 마을을 소환하기. 그럼으로써 김해 전시의 다릿발은 서울 전시보다 두 배로 늘었다. 그만큼 든든하달까.
내용은 어떠한가.
슬기와 민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공룡>은 서울 전시 그대로 내용을 유지하면서 보이는 방식을 다르게 했다. 이르완 아흐멧 & 티타 살리나의 <꽃 외교>와 <통화>는 일부 보완되기는 했지만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전시 전 <메시지 이동>이라는 제목으로 김해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고, 워크숍 결과물을 새롭게 선보였다. 포럼 렌텡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으로 일본을 거쳐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후융의 초기 영화 아카이브를 동일하게 선보였다. 서울 전시에서 서울 행정구역 도상을 이용한 평면 작품을 선보였던 최선아는 자카르타, 김해를 추가하여 조각설치 형태로 변신했으며, 가야토기와 인도네시아 전통문양을 이용한 평면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강점기에 일본군에 징집돼 인도네시아 전투에 참전했다가 잡힌 바 되어 인도네시아 군복을 입고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싸울 때 군공을 세워 인도네시아의 영웅이 된 양칠성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들고 서울에 왔던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는 김해 전시에서는 같은 소재로 창작 비디오로 나아갔다. 나라 없는 양칠성이 마주해야 했던 경계적 상황을 몽환적으로 재연했다. 마르코 쿠수마위자야 & 루작도시연구센터의 것은 얼핏 보아 아카이브 베이스인 점에서 서울 전시와 일치하지만 보여주는 방식을 달리하여 환골탈태했다. 서울에서는 자카르타 재개발과 관련한 사진과 책을 나열했는데, 김해에서는 오랫동안 건축가로 활동해온 마르코 쿠수마위자야가 기록한 텍스트와 수첩으로써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관객은 텍스트가 투사된 반투명 비닐스크린 사이로 들어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고, 텍스트가 박힌 네가필름에 플래시를 비추면 인도네시아 전통 그림자극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한글로 번역되었다면 아카이브에 그쳤을 자료를 스펙터클한 작품으로 승화한 솜씨가 빛난다.
새로 참여한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 & 빌리지 비디오 페스티벌 쪽은 아카이브와 비디오 작품을 냈다. 자티왕이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몰락지경에 이른 인도네시아의 시골마을. 그곳에서는 국내외 작가를 초청하여 비디오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국제적인 예술마을로 이름을 알렸다. 주민들이 큐레이터다. 공항 신설공사가 진행 중인 점에서 공항을 품은 김해와 사정이 흡사하다. 큐레이터 인증서, 명찰, 스탬프와 비디오 작품을 둘러보며 커피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땅을 잃은 주민들 이야기를 가라오케용 노래로 만들어 따라 부를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 5명이 만든 비디오 작품.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여 만든 이 작품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김해 전시의 백미라고 본다. 가족과 떨어진 이주 노동자의 현실, 한국인 고용주와의 갈등 등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시각으로 채록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만들어가는 김해의 이국적인 면모를 날 것으로 기록한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르완 아흐멧 & 티타 살리나의 비디오작품 <메시지 이동>.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가 사망한 이주 노동자의 넋을 기린다. 대성동 고분 유적에서 펼치는 진혼제는 몹시 가슴 아프다. 고대에는 인도에서 이주한 허황옥이 가야 한반도인과 함께 가야를 세운 반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주 노동이 실패로 귀결되는 현실이 대비된다. 새로 참여한 믹스라이스는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과일 설문으로써 두 나라의 감각과 인식 차이를 탐색한다. 김훤주 에세이는 서울 임종업을 대체한다.
김해 전시가 뜻하지 않게 성사됐다고 했거니와 뜻하지 않음이란 곧 우연성. 서울 전시의 출품작들이 대부분 폐기된 터라 작품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대개 작품들은 업그레이드되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서울 재탕이 되지 않고 애초부터 새로 기획된 듯이 결과된 것은 오로지 전시 기획자 오선영의 성품과 큐레이터십 탓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두 도시를 통해 두 나라 현대사를 비교함으로써 관객한테 현재 우리의 좌표와 지향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자는 뜻에서 아카이브와 작품을 뒤섞는 방식을 택하였다. 서울과 김해 전시는 이 점에서 동일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소가 다르다는 것. 같은 말을 반복함은 무슨 까닭인가. 다름 아닌 전시 기획자 오선영 이야기다. 김선정의 아트선재에서 나온 이래 줄곧 아웃사이더였다. 화랑 전시를 축으로 상품화하는 작품, 권력화하는 전시 기획자들… 뒤틀린 화단의 현실에 뒤틀려 제도권을 벗어난 그는 변방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스며든 곳은 구로구 문래동 철공소촌, 을지로 뒷골목 등. 노마드적 삶을 기꺼이 수용하였고, 그와 전시를 함께하는 작가들은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동안 그가 펼쳐온 전시는 작금 화단 현실에 대한 발언이었고, 발언은 장소를 옮겨가며 다듬어져갔다. 두 도시 이야기가 선택한 주제와 장소는 그 연장선에 있다.
오선영에게 김해는 처음이다. 서울은 선사시대에서 현대까지 역사가 충적된 반면 김해는 선사시대에서 가야까지, 강점기부터 현대가 있을 뿐 그 가운데는 텅 비어 있음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서두에서 가야 고분 위로 제트여객기가 날아가는 김해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언급한 것은 그가 체득했을 김해의 형편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시간 단층의 상당부분이 결락한 김해에서 서울과 자카르타의 유장한 이야기를 펼치는 전시는 얼마나 밥맛 없겠는가. 영민한 전시 기획자는 이를 알아차리지 않았겠는가. 서울 색깔을 덜고 인도네시아에서 김해에 해당하는 자티왕이를 불러온 것은 불가피하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전시 기획자 오선영은 <두 도시 이야기> 전인 2016년 11월 자티왕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곳 주민 큐레이터들과 함께 작업을 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구축한 네트워크가 자티왕이를 김해로 소환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 결과 서울-자카르타 이야기는 김해-자티왕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의 잇단 성사는 전시는 프레임과 동의어일 수 있음을 웅변한다. 프레임으로서의 전시는 장소를 옮겨가며 어디서든지 열 수 있다. 서울-자카르타, 김해-자티왕이의 맞세움이 가능하면 인천-상하이, 용정-오사카를 짝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인천-남포, 포항-함흥이라고 불가능하겠는가. 그 짝지음이 전시의 고갱이일 터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콘텐츠라면 현지 조달과 폐기가 수월하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오선영 기획자는 전시와 작품은 모름지기 펼치고 접는 것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해의 네 가지 키워드 간척, 비행장, 공장, 이주민 중에서 간척과 비행장이 빠졌다고 한들 그게 대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