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지금: 남쪽으로 향한 분청
2020년 3월 9일 – 3월 24일
반둥공과대학 수에마르드자 갤러리
기획: 아스무조 조노 이리안토, 오선영
주관/주최: Project 7 1/2, Visual Art Study Program, Craft Study Program, Faculty Art and Design, ITB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람이 흙을 손으로 빚어 1,300℃가 넘는 가마 속에서 구운 도기는 한 사람이 동일한 기법으로 제작을 했더라도 시간, 지역, 흙, 습도, 온도, 공기, 가마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꼭 같은 색과 모양을 갖기 어렵다. 사람도 지역마다 사용하는 언어, 억양, 태도, 모습, 문화가 모두 다르다. 한 가지 동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손으로 흙을 빚어 가마 속에서 구운 도자기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2019년 제5회 인도네시아 현대 도자 비엔날레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조장현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도자기법 중 하나인 분청기법 을 소개했다. 흙, 습도, 온도, 공기, 가마가 모두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한국의 분청을 만드는 과정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이주하여 사는 사람의 모습을 닮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작년 자티왕이에서 제작한 분청자는 환경의 다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 깨지고,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무척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으로 2020년 3월 반둥공과대학교 예술대학의 “시각 예술 연구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리고 반둥공과대학에 1974년 설립된 소에마르드자 갤러리에서 2020년 3월 9일부터 24일까지 조장현 개인전(기획: 아스무조 조노 이리안토, 오선영)을 개최한다. 전시 제목 “박고지금(博古知今)”은 중국의 사자성어로 옛 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현대 도예가 조장현의 작품을 보는 시각과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의 개인적인 문제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이해하고자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 예술대학 아스무조 조노 이리안토 교수와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 예술대학 테사 페터 교수를 필자로 초대했다. 이 프로젝트와 출판물을 기획하는 동안 나는 조장현이 어떻게 작업에 접근하는지, 테사 피터스와 아스 무조 조노 이리 안토가 어떻게 한국 도예가 조장현의 작품을 해석하는지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자 예술에 관한 두 저자의 다른 지식과 생각이 어떻게 연결되어 합의에 이르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시각을 통해 한국 도자기 산업과 예술계에 반영해야 할 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과정은 상호 생산적 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조장현 작가와의 인터뷰는 조장현이라는 작가와 그의 이전 작업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와 전시를 기획하면서 나는 조장현은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지역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기초부터 차근차근 작업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조금은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작업을 발전시켜가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그가 앞으로 할 작업에 기대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나 백자와 같은 전통 도자의 배경에 중국이 있다. 하지만 타지역으로 전파된 문화가 그 지역의 성격과 결합하여 개별적인 발전을 이루고 그 지역의 특색을 갖게 되듯이 한국에서 제작된 청자나 백자는 중국과 다른 한국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 중 분청자는 한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의 도자 기법이라 말할 수 있다. 분청자를 통해 한국 현대 도예가들이 전통을 계승하려는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전통 기법을 근간으로 하고 새로움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전통예술이 아니라 현대 예술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분청자의 발전은 정서적 표현 범위가 확장된 현대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소개하는 조장현 작가는 청자와 분청을 위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9세기에서 16세기를 아우르는 고려청자와 분청에 대한 이해와 함께 전통을 근간으로 둔 한국의 현대 도예가 추구하는 특성과 현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도자 전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에서 어떻게 조장현의 작업과 그의 작업 방식을 담론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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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 조장현 작가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전통 도자 기법을 계승하고 있는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그리고 언제부터 고려청자 전통 기법을 따르며 도자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장현: 저는 어릴 적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흙장난을 하면서부터 도예가를 꿈꿔왔습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재래식의(전통적인) 작업 공간이었던 아버지의 작업장은 어린 저에게는 놀이터이자 꿈의 공간이었습니다. 이후 미국 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고 모든 예술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대학에서는 가능한 다양한 예술 분야를 경험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전통 도자를 시작하였고 전통을 이해하고 동시대적 개념을 응용하는 데는 10년 이상의 아주 기본적인 수련이 필요했습니다. 자연에서 재료를 찾고 실험을 통해 이해하고 응용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한 일이었고 물론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동시대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지역에서 진행되는 예술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나의 모든 작업은 전통에서 기인합니다. 조형 혹은 장식기법뿐만이 아닌 제작방식에서도 이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전통에 대해 더욱 많은 이해와 의도를 파악하고 단절된 전통 도자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나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오선영: 조장현 작가는 고려청자 전통 기법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대 도자 작가라고 저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을 기반으로 동시대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장현 작가에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조장현: 저에게 전통이란 행위의 근간이 되는 “기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기준이 견고하게 확립되면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고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때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국의 전통 도자 기법을 계승하는 도예가들 사이에서는 전통 기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할 줄 아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도예가와 전통 계승자를 구분 짓는다는 미명 아래 우리에게 묵언 적으로 강요되고 규정지어지는 활동 가능한 범주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통을 근간에 둔 나의 “기준”은 내가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줌과 동시에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선영: 2007년도 중 후반에는 광주 의재미술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다양한 국제교류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광주의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 기획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활동했던 광주 지역의 예술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조장현: 2007년 의재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언어 소통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술관에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이 가능하고 중국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가 가능한 코디네이터를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광주 지역 내에서 딱히 교류가 있거나 활동을 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그 이유에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제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이 프로그램 참여를 잘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관리와 전시 현장 감독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1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트 펜스 사업에 큐레이터 겸 사무국장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주 대인시장에 기반을 둔 매개 공간 ‘미나리’라는 단체에서 큐레이터를 맡아 아시아 문화 예술인 국제 레지던시 사업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예술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지원사업의 대다수는 실험적 요소가 강하였고 장기 지원사업의 부재로 지속성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선영: 조장현의 관점에서 광주가 갖는 지역성은 무엇인가요?
조장현: 어린 시절 보았던 예술가들의 열정과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광주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아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고, 이곳의 지역민들 개개인부터 정치 영역에 이르기까지 소신으로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광주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은 많은 광주 지역의 예술가들이 활동함에 있어 틀림없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선영: 그렇다면 조장현은 작가로서 그리고 한 지역민으로서 광주 지역의 지난 역사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조장현: 한국의 역사에서 호남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 호남 광주의 처절한 의무는 자부심과 척박한 환경을 동시에 주었고 이러한 역설적인 환경에서 기인한 정신적 심화는 대대로 많은 예술가가 배출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예술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호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근거는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선영: 한국에서 현재 30대 후반에서 40대가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을 들은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대부분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아주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등도요에서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장현: 단지 젊은 세대의 문제이기보다는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전통에 대한 무지함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의 기적은 허상이며, 이에 대한 대가는 전통이고 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손실된 문화를 되찾는 일은 지키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생활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에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지키라는 강요는 궤변이며 방임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에만 의존하는 것 또한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대적 의무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한 의무의 실행은 인지한 자들의 의무이고 이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무등도요의 계획은 불투명합니다. 단지 시대적 욕구와 의무에 대해 충실히 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오선영: 조장현 작가는 근래 개인전을 중국과 한국에서 가졌습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네 번째 개인전을 갖습니다. 앞의 “징(澄)” (노고갤러리, 북경, 중국, 2018), “의의동망(衣衣東望)” (MOL갤러리 시안, 중국, 2019), “격경호(擊磬乎)”(갤러리민 서울, 한국, 2019)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장현: 우선 북경에서 가졌던 “징”이라는 전시 제목의 의미는 투명하고 맑음을 의미로 특히 한국청자가 갖는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안 전시 “의의동망”은 전시 책임자가 지은 전시 제목입니다. 의미는 ‘동쪽에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즉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전통도자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기에 도예계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질문 그리고 자문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졌던 전시인 “격경호”는 ‘유심재 격경호’라는 논어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제목입니다. 경쇠 치는 소리에 마음이 들어있다는 뜻으로 전시를 통해 마음속의 의미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지었던 제목입니다. 이전 작업과 신작을 동시에 선보이는 전시였습니다. 중국 차문화에 적용한 청자의 변화, 작품에 담겨있는 단순한 작가의 사고,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 등 소통을 위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청자 철채퇴화국화문매병(2018)은 전통적인 철채퇴화 기법에서 시작하여 문양을 나타내는 형식, 백색 화장토의 농담 그리고 이에 적합한 가마 속 위치 등을 고려한 작업입니다. 일반적인 전통 철채퇴화는 흑과 백의 대비를 고려해서 작업이 진행되지만 이러한 방식은 시대 환경적인 요소와의 마찰이 생깁니다. 저는 가끔씩 작업을 할 때 기준을 설정하고 요소의 재배치, 기술적 그리고 시대적 역류로서 작품을 조합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있어 정교하고 또렷한 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두병#1(2019)은 한국청자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과 개념으로 제작된 청자입니다. 기존의 청자는 완성도 높고 유려함을 추구하였다면, 이 작품은 단순함과 투박함, 표면의 다양한 유색의 변화를 나타내어 청자의 범위를 넓힌 작업입니다. 청자상감흔문매병(2019)은 작업과정의 흔적을 문양화한 작업입니다. 전통도자에서는 기본 양식과 생활환경에서 자주 접하는 자연을 문양화 하여 의미와 염원을 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동시대에서는 어떠한 문양도 의도와 개념을 통해 의미 있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인식되고 대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동시대 전통도예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장현은 광주 무등도요에서 고려청자 기법을 계승하고 있는 현대 도예가이다. 무등도요는 고려청자 재현과 도자기 문화 발전에 기여한 무형문화재 고현(古現) 조기정(1939~2007)이 제자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다. 조장현은 회화를 전공했고 그의 아버지인 조기정 선생에게 고려청자 기법을 전수받았다. 현재 조장현은 무등도요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 고려청자의 현대화는 물론 한국 도자 개발과 확산에 큰 노력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전시로는 “징(澄)” (노고갤러리, 북경, 중국, 2018), “의의동망(衣衣東望)” (MOL갤러리 시안, 중국, 2019), “격경호(擊磬乎)”(갤러리민 서울, 한국, 201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