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 서울

7 1/2 프로젝트는  2017년 7월 21일부터 9월 3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 를 전시한다. 참여작가는 마르코 쿠수마위자야 & 루작, 배영환, 최선아, 슬기와 민, 임종업, 이르완 아흐멧 & 티타 살리나,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 포럼 렌텡이며, 이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건축가, 도시 연구 단체, 저널리스트, 미술작가들이다.

 

7 1/2 프로젝트는 2014년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었고 지난 3년 동안 서울의 문래동과 장사동에서 많은 작가들과 다양한 형식으로 장소특정적이며 실험적인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는 이 장기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술관, 즉 화이트큐브에서는 처음으로 여는 전시이며, 동시에 2018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게될 7 1/2 프로젝트를 연결짓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두 도시 이야기: 기억의 서사적 아카이브>의 출발점은 인도네시아와 한국, 두 나라가 우연하게 공유하는 평행적인 근현대사의 경험과 인식이다. 이 전시는 1945년 이후 두 나라의 역사 속에 잊혀졌거나 주목받지 못한 사실과 이야기들을 수집, 연구, 자료화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와 두 나라 작가들의 ‘기억’에 관한 주관적, 예술적 접근을 병치시킨다. 여기에서 ‘도시’는 넓은 의미에서 본 ‘문화 역사 공동체’일 수 있겠다. 반면 ‘서사적 아카이브’는 객관적, 보편적인 사실과 주관적, 선택적인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역설적인 ‘간극’을 암시한다. 이 전시는 실재와 허구, 공동체와 개인, 객관적 기록과 예술적 번역의 ‘사이’를 보여주고 탐구할 것이다. 각 작가의 개별작업으로 이 전시에서 보여질 역설적 ‘사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틈이 확연하게 드러나기도할 것이고, 오히려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서로 미묘하게 교차하며 상호침투하는 접촉지점이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7 1/2 프로젝트는 지난 3년 동안 ‘예술과 무의식’ 그리고 ‘감각’에 대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 주제의 연결은 미학적 해석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었으며, ‘관점의 이동’과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탐구과정이었다. 2017년의 7 1/2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이런 주제의 연장선 위에서 역시 ‘감각’을 중심에 놓으면서도, 역사적, 집단적, 개인적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한다. 지난 3년 간 7 1/2 프로젝트가 진행해온 탐구 과정 속에서 작가들에 의해 어떤 다양한 예술적 경험들이 축적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확장적인 미학적 담론을 이끌어내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내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A

슬기와 민 「공룡」 직물에 디지털 프린트, 2017

충청남도 계룡시는 2015년 인구 41,730명으로, 한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에 해당한다. 2003 년 논산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육해공 3 군 본부가 있는 대표적 군사 도시로, 인구의 40 퍼센트 이상이 군 관계자다. 2014년 현재 산업 종사자는 8,729명인데, 이중 농림어업 종사자는 0명, 제조업은 785명이며, 나머지는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사방은 2014년 추산 인구 28,454명으로서, 아마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작은 도시일 것이다. 수마트라 북부 아체 주에 있는 섬으로, 인도네시아 최북단과 최서단 도시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점령하에 건설된 요새와 벙커가 많이 남아 있다. 다수 인구가 무슬림으로, 샤리아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주 산업은 농업이다. 과테말라 작가 아우구스토 몬테로소 (1921–2003)가 1959년에 써낸 「공룡」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소설에 속한다. 아무튼, 2005 년 루이스 펠리페 로멜리가 네 단어짜리 「 이민자」 를 써내기 전까지, 적어도 스페인어 작품 중에서는 가장 짧은 소설이었다고 한다. 주제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도시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명백하다. 「공룡」의 이야기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다섯 개로 나뉘어 각각의 깃발에 인쇄된다. 각 깃발은 의미로 충만하면서도 불완전한 독서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B

포럼 렌텡 「자바에서의 10년」 리서치 프로젝트, 2017

「자바에서의 10년」은 후융이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남짓 살면서 구축한 영화, 예술, 문화 관련 생각을 따라가는 리서치 프로젝트로, 그 중에서도 특히 인도네시아 독립 초기의 관점에 집중한다. 포럼 렌텡은 당시 다양한 신문과 영화에 실렸던 후융의 생각을 발굴하고 수집했다. 이 리서치는 100년 이상 이어져 온 영화에 대한 생각과 아카이브 역사를 한데 모은 작업이다.

 

C

포럼 렌텡 「자바에서의 10년」 컬러, 무성, 10분 , 편집, 2017

인도네시아의 일제 강점기(1942–1945) 부터 인도네시아 혁명기(1945-1949)와 수카르노의 집권 초기(1949–1952)에 이르기까지 후융은 연극, 영화, 예술,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후융이 글이나 희곡, 영화, 연극 학교를 통해 제시했던 기준점은 미술, 사진, 음악, 영화, 연극, 문학 등의 영역에서 인도네시아의 미학이 형성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후융은 국가의 정체성, 교육, 그리고 예술과 문화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협력과 같은 문제에도 의견을 제시하였다. 「 자바에서의 10 년」은 영화 미학과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의 정체성에 관해 후융이 가졌던 관점을 아카이브와 기록을 통해 엮어보려는 시도이다.

 

D

후융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한 부름」 흑백, 사운드, 31분, 1943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한 부름」은 인도네시아의 일제 강점기에 후융이 만든 유일한 영화이며, 인도네시아의 최초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끌려온 호주, 영국, 네덜란드인들이 배우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수용소 안에서 포로들이 얼마나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수용소는 훌륭한 보건시설을 갖추고 있고, 포로들은 자유롭게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며, 맥주를 마시고 당구를 친다. 한 여성 포로는 살이 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일본군의 선전영화로, 영화 촬영 막바지에 홍보 전단이 호주 전역에 뿌려졌으나,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영화는 압수되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 정부영화사에서 일하던 네덜란드인 감독 얍 스파이어가 「 일본이 보여주는 것」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여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1945년 도쿄에서 열린 전범재판소에서 일본군 지휘부의 혐의를 입증하기위한 증거로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의 감독 요리스 이벤스는 이에 대응하는 영화 「인도네시아를 향한 부름」 (1946)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국립 영상 음향 아카이브 소장품]

 

E

후융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 No.3」 흑백, 사운드, 9분, 1945–1949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는 일본 군사 정권이 연합군에 항복한 직후, 닛폰 에이가샤 자카르타로부터 촬영 장비를 가져와 설립되었다. 1946년 네덜란드군의 제1차 침공 당시 연합군과 네덜란드군은 자카르타를 점령하였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족자카르타로 대피한 상황이었다.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 역시 족자카르타로 이동했다. 이후 그들은 인근의 작은 마을인 솔로로 옮겼다. 후융은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 운동에서 카메라맨과 편집자의 역할을 맡았다.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뉴스 영화)는 국민과 정부가 인도네시아 독립 과정에 참여한 방식, 링가르자띠 협정과 원탁회의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정부와 네덜란드 사이의 협상 등, 당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촬영하였다.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 No.3」(인도네시아 뉴스 영화 3호)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베리타 필름 인도네시아의 시리즈 중 하나로, 당시 국제 관객을 대상으로 제작, 배급되었다. [ 인도네시아 뉴스 영화 3호, 인도네시아 국립기록원 소장]

 

F

후융 「프리다」 흑백, 사운드, 63분, 1950

영화의 원 제목은 「하늘과 땅 사이」였다. 그러나 정부의 검열 과정에서 키스신이 삭제되었고, 각본을 쓴 아르민 파네가 팀에서 하차하면서 제목이 「프리다」로 바뀌었다. 삭제된 장면은 사실상 인도네시아 영화 역사상 최초의 키스 신이었다.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동양과 서양의 민족주의 정체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문제는 인도네시아라는 신생국의 지식인, 예술가, 정치인들에게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프리다」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믿는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혁명이 일어난 후, 민주주의를 구축해나가는 국가의 사회정치적 환경 속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준다. [ 시네마텍 인도네시아 소장품]

 

G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이야기」 아카이빙, 영상, 사운드 설치, 2017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는 양칠성(1919– 1949)의 잊힌 시간 속에 담긴 여러 관점들을 수집한다. 타자에 의해 나열된 양칠성에 대한 여러 기억들은 마치 소설 속 이야기와도 같다. 이것은 양칠성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 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법한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H

워치독 「가짜 섬」 다큐멘터리 필름, 59분, 2016

자카르타 북쪽 해변에 17개의 섬을 새로이 간척하는 사업을 둘러싸고 발생한 논란을 어부와 해변가 거주민의 시선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사업은 1995년 수하르토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공포하였다. 인공섬을 만드는 것이 도시의 면적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환경부를 포함한 여러 관계자가 사업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환경부는 환경 평가와 허가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년간 이 사안은 정부와 법원 간의 치열한 갈등으로 비화했다. 2015년 특별수도구역(DKI) 자카르타시 정부가 8개의 섬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리자, 자카르타만 구제 연합(Save Jakarta Bay Coalition)에 속한 어부와 시민 사회는 자카르타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에 자카르타시의 한 의원이 개발 업체 임원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수백만 달러의 재산을 세탁했다는 사실을 부패척결위원회(KPK)가 밝혀내자 간척 사업은 국가 수준의 사안으로 대두되었다. 기소된 두 가지 부정부패 혐의 모두 유죄로 판결되었다. 2017 도지사 선거에서도 이 일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I

워치독 「불공평한 자카르타」 다큐멘터리 필름, 53분, 2016

자카르타 법률 구조회는 강제 퇴거와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305건의 강제 퇴거 사례가 있었음을 밝혔다. 최소 70%의 퇴거는 상응하는 해결 방안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퇴거 사례 중 50% 는 인도네시아 군(TNI)과 장교가 관련되어 있었다. 80%는 하천의 정상화 사업과 해안 방어를 위한 대규모 구조 건설 등의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 이야기는 캄풍 루아르 바탕, 캄풍 다답, 부킷 두리에서 발생한 퇴거 사태의 여파를 추적한다.

 

J

마르코 쿠수마위자야 & 루작 「저항을 아카이브하기」 아카이빙 프로젝트, 2017

「저항을 아카이브하기」는 1945년 이후에 발생한 수많은 저항의 순간 중 일부를 선택하여 그 기록을 수집한 작업이다. 저항의 순간을 잘 기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카이브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가? 이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떤 가능성이 열려있는가? 수많은 저항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하지만, 그에 관한 물질적인 증거와 서사가 존재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성찰의 과정을 갖는다. 기억이라는 행위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은,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로 인해 불가피하게 자기– 여과의 과정을 수반한다.

 

K

이르완 아흐멧 & 티타 살리나 「통화(通花)」 아카이빙, 영상 설치, 2017

이르완과 티타는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종의 꽃을 재배하고 대한민국에 헌사 한다. ‘꽃’을 통해 예술은 과거,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 「통화(通花)」는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한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아무도 확언할 수 없으나 이 작업을 통해 평화를 염원하는 작은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흘려보내본다.

 

L

임종업 「서울은 요새다」 아카이빙 프로젝트, 2017

박정희 정권에서 진행된 국토계획, 특히 서울 도시계획과 그에 따른 건축은 서울 도시계획의 뼈대를 이루어 현재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는 김수근이라는 ‘ 걸출한’ 건축가의 부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요새화는 북한의 남침을 대비하는 목적을 가지지만, 속내는 독재정권의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요새화 일환으로 추진된 사안들은 실제 목적에 쓰인 바 없이 부작용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구조물을 뜯어보면 졸속으로 추진돼 유사시 제 역할을 했을지 의심스럽다. 박정희 시대의 건축은 공포를 바탕으로 조성된 조악한 구조물일 따름이다. 서울 요새화는 구호만 거창한 허깨비였다. 임종업의 아카이브는 박정희 정권 당시 발행된 신문기사와 공문서를 통해 파편화한 사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M, N

최선아

「서울 1 : 10,000 」 나무판 위에 블루프린트 콜라주, 2017

「서울시행정구역변주도 」 포토그램, 2017

지도는 현실세계를 추상화한 기호다. 지도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생각이 형상화되어있다. 지도는 이동과 위치파악을 위한 정보이며, 당대 사회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안내서다. 수시로 업데이트가 가능한 디지털 지도와 달리, 종이 위에 인쇄된 지도는 현실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기 어렵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순간적 기록이 되어 역사적인 가치를 얻는다. 최선아 작가는 2003년판 1:10,000 축척 서울의 도로지도를 예술적으로 재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서울의 25개의 구와 424개의 행정동을 선택적으로 확대시켜 A4 종이 크기의 블루프린트로 옮겨 인화시키고, 낱개의 청사진 지도를 나무판 위에 이어 붙여 결과적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서울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실제적인 지리적 연속성은 깨어지고 교란되면서 새로운 인근성이 정의된다. 이 새 지도 위에서는 강북과 강남, 구와 동에 따라 존재하는 지역적인 갈등과 편차의 폭이 가상적으로 붕괴되고 해소된다. 작가는 새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난 서울의 특정장소를 누락시킨다. 파랗거나 하얀 면적으로 표현된 이 장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장소성을 유추하거나 재구성할 수 있다. 이 장소들은 생략되고 가려짐으로써 역설적으로 강조되고 주목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확인되는 지도 위의 부재하는 정보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조형적 형상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 정보’ 가 ‘ 이미지’가 되어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O

배영환 「물 좀 주소」 영상 설치, 2016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노래, 유행가에는 그 시대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한국의 격동기—유신 독재 시대—에 풀리지 않는 갈증을 표현한 노래 ‘물 좀 주소’는 한 대수의 1집 『 멀고 먼 길』(1974년)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당시 이 노래는 반체제를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배영환의 「물 좀 주소」(2016) 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세운상가와 장사동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P

배영환 「과거도 오래 지속된다」 영상 설치, 2017

종로구 예지동의 시계골목은 1960년대 청계천 주변 상인들이 이 곳으로 이주하여 형성된 곳이다. ‘예지동 시계골목’은 1970–1980 년대 무렵 귀금속과 시계 판매 전문 상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했고 지금도 시계 전문 상가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많은 점포들은 문을 닫거나 또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어서 이제는 낡고 허름해진 빈 건물들과 그 사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옛 간판들만이 당시를 추억하게 해준다. 배영환 작가는 이 골목길의 2017년 현재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장소성을 재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