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0월 31일 토요일 오후 6-8시
장소: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영화진흥위원회, 7 1/2
2015년, 7 1/2의 다섯 번째 프로젝트인 <여기, 나는 누구인가?>는 김숙현 실험영화 감독의 작품에서 시작된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김숙현의 영화 <여기, 나는 누구인가?>는 설치미술, 연극, 무용, 사운드 아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이지연(미술), 배서영(미술), 하상철(미술), 장홍석(안무), 류성국(연극), 강말금(연극), 이현수(연극)-과 교묘한 방식으로 연결되기도, 때로는 분리되기도 한다. 분리된 작업들은 각각 영화 상영회, 공연, 전시의 형태로 표현된다.
10월 31일 토요일 오후 6시, 정체 모를 초대장을 받은 관객들은 ‘영등포구 도림로 128가길 1번지’에 모이게 된다. 이곳에는 영화, 공연, 전시가 준비되어 있는데, 관객들은 각각의 작품이 지닌 방식에 따른 서로 다른 매너와 태도를 요구 받는다. 이는 일종의 게임과도 같은 역할놀이인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이상한 나라로 향하게 된다.
기획/연출: 오선영
김숙현 여기, 나는 누구인가? 실험영화
이지연 존재하지 않는 경계 설치
배서영 수분受粉 벽화
하상철 ReNCODE 사운드 설치
장홍석(안무/출연), 강진안(출연), 김승록(출연) 그것인지 안무
류성국, 강말금, 이현수 출연 여기, 나는… 연극
특별출연: 오쿠다 마사시, 최윤진
무대감독: 김태진
촬영감독: 장영민
촬영: 이지락
조명/사운드: 하상철
음악: 제인
음향감독: 장태순, 노익환
코디네이터: 윤주영, 최경민
자문: 조만수, 적극
번역/감수: 송미경, 오선영
여기, 나는 누구인가? (2015)
영화 속에서 묘사된 토끼 굴에 빠진 이상한 세계는 마치 책의 세계로의 여행과 같다. 이는 어른이 ‘글자를 읽는 것’ 보다는 아이가 ‘동화를 보는 것’ 유사하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몸의 언어로 자기를 표현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법칙 안에서 분류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며, 객관성을 강요하는 불만족스러운 ‘어른’들이며, 홀로 격리되어 부조리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다. 영화, 영상, 공연, 애니메이션 등으로 등장했던 비육체의 이미지인 앨리스가 육체를 가진 ‘여기’, 이 사회에서 만날 봄직한 어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요소들-시간과 공간, 서사, 이미지, 육체적 퍼포먼스, 기호들-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부여해 의미를 생성하고 조화시키는 몫을 가진다.
ReNCODE (2015)
하상철 작가는 프로그래밍 언어(coding)를 통해 성경 텍스트 전체를 모스부호로 변환시켜 작품을 제작하였고, 여러 전시들을 통해 선보인바 있다. 이번 <여기, 나는 누구인가?> 에서는 성경 전체가 아닌 요한복음 만이 부호화 되어 새로 를 제작하여 보인다. 이 작업은 문래동 철공소 골목 길 가의 어둠을 비추는 가로등 역할을 하기도, 공연 무대에서의 조명 역할로 기능하기도 하며, 장소 특정적인 작가의 설치 작업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ReNCODE는 작업의 기능 방식과 모듈화를 통해 더 확장된다.
그것인지 (2015)
대본/안무: 장홍석
출연: 장홍석, 강진안, 김승록
여기 하나의 움직임이 있다. 이 움직임을 보고
퍼포머 A는 △△라고 한다.
퍼포머 B는 □□라고 한다.
퍼포머 C는 ◯◯라고 한다.
그럼, 이 움직임은 무엇일까?
생각을 움직임으로, 움직임을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 덧붙여지는 여러 해석들은 생각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양한 관점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움직임의 스펙트럼은 확장되기도 한다.
생각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행위의 목적은 명확한 생각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함이기 보다 무언가를 생각(상상)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 혹은 느꼈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막연한 생각(상상)의 표현/움직임을 ‘생각(상상)=움직임(표현)’이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생각(상상)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되기 이전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하는 이 또한 ‘생각(상상)=움직임(표현)’임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보고 느끼는 것은 명확하게 언어로 포획할 수 없는, 그러하기에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무수히 변형되어 다각도의 해석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가 재생산되고 그것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각도로 왜곡되고 굴절된 해석들이 모여 어떤 형상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지점들이 발견될 때, 비로서 흐릿했던 실체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홍석의 <그것인지>는 이처럼 움직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해석을 통해 움직임의 스펙트럼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여기, 나는… (2015)
연출: 오선영
대본: 류성국, 오선영
출연: 류성국, 강말금, 이현수
특별 출연: 오쿠다 마사시, 최윤진
-연출노트
2015년 10월 1일 오후, 비가 왔다. 나는 ‘문래동 철공간판예술프로젝트’ 관련 미팅을 하기 위해 문래동에 갔고, 최영식 선생과 최두수 작가와 미팅 후 함께 식사를 하러 전 집에 갔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던 중, 최 선생과 최 작가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전 집의 대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 상태의 내 귀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렸고, 그 중 한 젊은이의 목소리가 또렷이 전달되었다.
“나는 지금 27살이고요,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서 계속 살다가 지금은 여자친구 집에서 함께 머무르고 있어요. 나쁘게 말하면 여자친구한테 얹혀사는 거죠, 좋게 말하면 동거이고요.”
그는 자신이 현재 삶에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보고 나는 그가 연극을 하는 이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문래동에서 작은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쿠다 상이 그 테이블에 동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 젊은이의 말을 경청했다. 연극인들의 삶을 모르지 않기에 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고, 연극인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의 많은 젊은 이들이 생계 문제를 고민하고 있으며 나 또한 공감하는 바가 있기에 마음이 짠했다.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씬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의 일행들이 담배를 피우고 돌아와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김숙현 감독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제작한 <여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작품이 단순히 영화 상영회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고 7 1/2 프로젝트에서 여러 작가들과의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어온 이야기들과 이 영화가 만나면서 더 큰 프레임의 확장을 기획했다. 나는 우리가 삶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그것들이 예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될 수 있기를 바랐다. 결국 이것이 내가 올해의 7 1/2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각”인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서는 “연극”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거기에 맞는 연극 연출가 찾기에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나는 그날 전 집의 젊은이를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다음 날 김숙현 감독과 통화를 했고, 이 이야기를 전했다. 때마침 그날 김 감독은 오쿠다 상의 초대로 연극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나는 김 감독이 오쿠다 상을 만나면 그날 전 집에서 동석했던 젊은이에 대해서 물어주기를 부탁했다. 연극을 보러 간 김 감독은 내 부탁대로 오쿠다 상에게 전 집의 젊은이에 대해 물었고— 내가 찾던 그는 바로 그날 연극의 주인공이었다.
몇 일 사이 너무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비 내리던 10월의 오후, 전 집에서 스쳐 지나갔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바로 이들에게 출연 제의를 하였고,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그대로 무대 위로 올렸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거기서부터 <여기, 나는…>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기, 나는…>은 연극 작업이지만, 실제 세 배우들의 이야기 이며, 우리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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