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15년 9월 6일 – 11월 14일
장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128가길 1 지하 1층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존재하지 않는 경계 Enter Nowhere: Down the Rabbit Hole>는 9월 6일부터 11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이는 전시인 동시에 제작과 설치의 기간이다. 다시 말해 이 기간 동안 이지연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해나갈 것이며, 관객들은 오고가며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작품 관람은 언제든지 가능하며, 보다 깊은 모험에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는 info@sevennahalf.com 으로 연락하기를 추천한다. 이를 통해 작가 혹은 큐레이터와의 대화, 미팅, 혹은 작업 제작 과정의 참관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토끼굴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내려가는 발걸음에서부터 이메일 작성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자신의 결정에 따라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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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 (이하 “오”) 문래동 지역 주민으로서 지역 예술과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최영식 (이하 “최”) 저는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중소기업은행에서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0년 10월 31일 날짜로 퇴직하였습니다. 우리시대의 가장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은행의 업무가 천직이라기보다는 일단 사회의 직장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서 결혼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교육시키고 하는 삶을 사는 이 시대 가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도 작용하였지만, 가장의 책임감이 등을 떼밀기도 하여 유턴 할 수도 뛰어 내릴 수도 없이 “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하면서 퇴직이라는 강제하차 지점까지 오게 된 셈이죠. 인생 2막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정년은 오히려 저에게 반가운 사건이었습니다. 가장에게 퇴직은 경제적 효용이 끝난 사회적인 발기부전 상태임에도 말이죠. 저에게는 처음으로 저 스스로가 온전히 시간의 관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나중에 여유시간의 과잉이 두렵기도 했지만, 어렴풋이나마 느리고 단순하게 살기로 하고 밥을 챙기는 삶보다 누군가의 밥이 되기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제작소 사회공헌프로그램인 해피시니어과정, 은행의 퇴직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을 조금씩 다듬어 2막의 계획을 구체화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우선 활동시간을 4.3.3으로 배분했죠. 4는 사회적 의미나 가치가 있는 일(단,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재미없는 일은 제외) 3은 가사분담과 가족소통, 나머지 3은 건강과 취미 등 여가 활동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가사분담을 위해서는 동네에서 노는 것이 좋은데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동네엔 함께 할 인적 네트워크가 아주 취약하다는 사실이 아쉬웠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동네는 잠만 자는 숙소일 뿐이고 대부분의 활동은 동네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동네 복지관이나 경로당을 가기에는 아직 너무 젊고 말입니다. 더구나 자기를 나타낼 명함도 없는 백수 입장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는 상실된 자존감과 더불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들과 주민이 함께 하는 와인강좌, 문래도시텃밭,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감사, 예술가 협동조합 추진 참여, 거버넌스 형태의 문래예술공장 TF팀 참여 그리고 운영위원등의 활동과 작가들의 전시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의미 있는 일과 여가활동을 일정부문 충족하게 되기도 하였죠. 처음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동네에 스며들게 된 것 같습니다.
문화소비자로서 문래동은 저에게 아주 좋은 학습 터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의 여가란 소모적인 술 문화 아니면 등산, 낚시 등 문화 활동은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인사동 겔러리에 가도 괜히 주눅 들곤 하지요. 동네에서 작가들과 어울리다 보니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관련 서적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와의 교류를 통해 작가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것을 알고 작업노트에 대한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고, 나름 예술을 읽는 근력에 살이 조금씩 붙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문래동을 소개해달라는 단체들이 있어 가이드 겸 어설픈 도슨트 행세를 하며 문래동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퇴직 후 활동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체득한 내용들을 베이비 붐 세대를 상대로 강의나 토의, 정책 포럼에 참여하기도 하고, 도시농업에 대한 역할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환경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에 1992년부터 평생회원으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되어 서울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인사, 윤리위원장), 우리 동네 햇빛 발전소, 노을 공원 살리기 시민 모임 등의 환경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되었나요?
최: 누구나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치열한 삶속에 짓눌려 발아를 멈추고 있을 뿐, 실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취미나 관람자로서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예술을 즐기고 있기도 하지요.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퇴직 후 문래창작촌을 알기 전 나름 인생 2막은 호모 루덴스로 살아 볼까 생각하기도 했고, 그것이 예술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촉발시킨 측면이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호모 루덴스로 살고 싶다는 바람은 1막에서 은행 업무에 대한 기획을 오랫동안 수행했지만 그것은 결국 조직을 위한 산물이지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자연이든 사물이든 철학이든 다양한 상상력과 관찰, 지각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굳어지고 갇힌 감각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오: 문래동에서의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 문래동에서의 예술을 따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문래창작촌이라는 자연스러운 예술 생태계가 형성된 것은 상대적으로 값싼 임대료가 주요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들이 특정목적이나 작업수행을 위해 인위적이든 자발적이든 레지던스 형태로 모여든 것도 아니고 또한, 철공소지역이라는 장소 특정적 예술 활동을 위해 모여 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다양한 창작공간의 군집일 뿐 문래동 지역에 기반을 둔 작가로서 특별한 경향성을 보인다거나 그러한 움직임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다양한 장르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어 상호 교류를 통해 장르 간 협업이나 다른 장르로부터 예술적 영감이나 상상력을 차용할 수 있는 강점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가공되지 않는 날 것 같은 문래동 환경, 치열한 삶이 현장이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지역의 특성이 예술가들의 창작력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게 됐습니다.
오: 문래동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러한 활동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최: 개인적으로 도시에서 동네 또는 마을이 갖는 공동체적인 유대감이나 정서를 찾아보고 만들어 가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문래도시텃밭, 작가들과의 시 모임, 철공소분들 주축인 산악회, 작가들과 철 소공인과의 교류활동 통해서 교감으로 사람 냄새 나는 동네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더불어 문래 철강단지와 창작촌 지역이 서로 아름다운 공존을 하는 지속가능한 문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거대 상업 자본에 의한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든 지역의 역사, 문화, 시간, 삶을 깡그리 밀어 내고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정주민이 들어서는 개발방식은 원치 않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마찌꼬바로 일컬어지는 1인 임차 소공인이나 예술가들의 공통된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소공인들과 교류를 통해 예술가과 입장이 다르지 않다는 점의 상호 공유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역할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 선생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7 1/2의 올 해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기능적인 불협화음>을 통해 이 지역 철공소에서 일하는 분들과 예술가들 사이의 괴리감이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발생한 해프닝이었지만 7 1/2 프로젝트가 이곳 문래동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큰 열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문래동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이와 같은 괴리감을 느낀 사건들이 있었는지요?
최: 예술가들과 철공소 종사자분들의 괴리감은 여러 가지 유형이 따로 또는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우호적인 분들도 없는 건 아닙니다. 오랫동안 형성된 철공소 지역에(물론 시화철강단지조성 등 정부의 공장 외곽이전 정책, 철강경기의 하락 또는 침체로 인한 기존 사무공간의 공동화 현상 등에 따른 현상이기도 함) 예술가들이라는 이질적인 집단이 새로운 이주민으로 들어오는데 따른 정서적 문화적 세대적 차이로 인한 괴리는 어쩌면 필연적 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2011과 2012년 재개발 문제와 관련하여 서울시, 영등포구 등에서 지역여론 수렴이 진행되고 있었고 건물주, 예술가, 세입자, 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해가 충돌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철공소와 예술 창착촌이라는 색다른 동거가 메스컴의 좋은 기사거리가 되면서 오히려 본래의 철강단지보다 새로운 이주자인 예술촌이 부각되는 것에 대한 기존 정주민으로서의 불쾌감이 작용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용산참사, 홍대 두리방, 명동 미르카페 등에서 임차인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파견 예술가들의 일련의 문화투쟁과 교차되며 예술가들이 이 지역을 스퀏까지는 아니어도 재개발의 저해요인이 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건물주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예술가들의 순수작업공간으로 쓰이지만 전시목적의 대안 공간을 겸하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거리 퍼포먼스나 공연, 공공 미술 차원에서 조형물, 벽화들이 늘어나면서 외부 관람자 유입의 증가도 괴리감을 촉발시킨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외부관람자의 증가, 특히 사진 촬영은 철공소 종사자들이 때로는 기름때를 묻히고 열심히 자재를 가공하고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대상화되거나 관찰됨으로서의 불편함과 작업 방해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카페, 식당 등 새로운 상업자본이 유입되면서 임대료 상승을 동반하게 됩니다. 철공소가 나간 자리에 상업시설이 들어와 임대료를 상승시키고 이 시설이 새로운 외부인을 유입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들의 임대료도 동반 상승하지만 임차 철공소분들의 시각에서는 예술가들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사례 1
한창 문래동 재개발 문제가 관심사 일 때 어느 작가가 기업은행 문래동지점 주차장에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기업은행에 협조요청을 해왔다. 그런 뜻을 전달하자 지점장이 난색을 표하며 기업은행이 소재한 54번지에 건물을 소유한 철강자재, 가공 사장들 모임에서 이곳이 원래부터 문래 철강단지인데 최근에는 문래창작촌으로 더 알려지고 있다면서 기업은행 문래동지점에 철강단지라는 광고판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주요 거래처들이라 거절 할 수도 없고 그 분들이 예술가에 대해 민감해 있는 상황이라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전시 장소는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 기업은행 협찬으로 문래철강단지라는 간판이 두 곳에 내걸리게 되었다.
사례 2
문래동 예술가, 주민, 직장인 등이 동네에서 커뮤니티형 옥상텃밭을 2011.5월부터 운영하여 왔다. 옥상 텃밭은 하나의 건물옥상처럼 보이나 계단을 경계로 소유주가 다르나 양쪽 건물주의 허락 하에 옥상의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조성했다. 2012년 1의 사례와 비슷한 시기에 계단 우측 편 건물 소유자가 옥상을 이유 없이 무조건 비우라고 통보하여 결국 좌측의 비닐하우스 반동을 없애고 우측의 작물들을 옮기고 현재까지 한쪽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 건물주는 사례 1의 건물주 모임의 총무로 예술가들에 대한 반감으로 사용을 못하게 한 것이다.
사례 3
2013년 철부지의 날 (부제: 철 장인을 찾아라)행사가 문래동 작가에 의해 기획되어 (영등포구청, 영등포문화원 등 주관)열렸다. 당시 행사의 일환으로 장도리, 산소마스크 등 공공 조형물을 설치하고 공연 등 문화행사가 진행되었으나, 행사취지와는 다르게 정작 철공소 종사자분들과는 사전 교류나 협의 없이 전시성행사로 진행되었고 일부 철공소에서 조형물을 철거하고 교통통제에 항의하는 등 문제가 야기되기도 했다.
사례 4
그 밖에 어느 지역은 길목에 영화촬영금지, 사진금지, 셔터 그래피티 금지 등의 문구를 스프레이로 써 놓기도 해 아직까지 지역 주민과 갈등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최영식은 문래동 지역의 주민이자 이곳의 문화예술 전도사이다.
* 오선영은 동시대 현대미술이 사회에 기능하는 방식과 관계 맺음에 주목하며 미술이 지역과 사회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탐구하고 있다. 2014년부터 현재 《7 1/2》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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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오후, 무료함에 빠져 있던 앨리스는 문득 토끼를 본다. 토끼를 따라 간 앨리스는 자그마한 토끼굴로 들어가고,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었던 이상한 나라(Wonderland)로 입장한다.
<존재하지 않는 경계 Enter Nowhere: Down the Rabbit Hole>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참여자는 지하에 위치한 7 1/2 스튜디오에서 일종의 토끼굴을 경험하고, 지하공간에 설치된 이지연의 작품 속을 거닐며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7 1/2 프로젝트의 총기획자인 오선영 큐레이터와 이지연 작가의 조우에서부터 그러했다. <기능적인 불협화음>과 <수분> 에 이어진 `취소된 전시`로 무료함에 사로잡힌 오선영 큐레이터는 이지연이라는 토끼를 만난다. 본래라면 전시 준비로 한창이어야 할 때, 예정대로라면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야 할 공간에서, 원래는 마주칠 일이 없었던 작가와 조우한다. 이지연이 보여준 모호한 공간에 빠져들면서, 토끼굴의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지연 작가의 입장은 이와는 반대이다. 오선영이라는 토끼를 따라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토끼굴을 발견한 그는 망설임 끝에 발자국을 내딛으며 모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모험이라는 단어가 호들갑스럽게 느껴지기 않기를 바란다. 모험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인데, 그 위험이란 지극히 다양한 형태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일상도 모험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번 전시 또한 모험의 요소를 곳곳에 지니고 있다. 큐레이터와 작가는 서로에게 처음이며, 화이트큐브가 아닌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전시와 작업 제작은 동시에 진행되며, 최종 형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처럼 큐레이터와 작가와 관객이라는 참여자들 모두는 저마다의 모험 중에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모험을 공유한다. 바로 토끼굴이다 : 토끼굴을 통과하면 무엇이 나올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이다. 현실이지만 현실의 규칙을 적용할 수 없으며 때로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 토끼굴이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듯, 이지연의 작업은 관객을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끌 것이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실제의 공간을 상상의 공간으로 확장하고 공유하는 이지연의 작업은 7 1/2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었던 바로 그 지점과 맞닿는다. 7 1/2의 발생에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주요한 텍스트로 영향을 미쳤다. 현실의 규칙들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나라의 세계처럼, 7 1/2 프로젝트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을 개진하고 있다. 7 1/2이 문래동 철공소 골목의 지하에 자리잡은지 반년이나 된 지금에서야 토끼굴을 구현하게 된만큼, 나는 이번 전시에 기대가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저마다의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오선영 큐레이터는 이지연 작가의 작업을 통해 존재의 너머,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확장된 상상 속 공간 경계에서의 모호함이 구현될 것을 기대한다. 한편 이지연 작가는 7 1/2의 지하 공간이라는 토끼굴이 자신에게 던져줄 영감을 기대한다. 아울러 전시 기간 동안 자유롭게 오가는 관객들은 내일이 되면 작업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기를, 혹은 이대로 유지되기를 기대한다.
전시인 동시에 작업 제작 기간인 두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의 간극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고 좁혀질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모험이란 그런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위험한 것이고, 모험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의 토끼굴, 다시 말해 꿈 속의 모험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지루한 현실은 이상한 나라가 될 것이다.
“(앨리스의) 언니는 눈을 감고 앉아서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있다는 것을 반쯤은 믿었다. 하지만 눈만 뜨면 이 모든 것이 단조로운 현실로 바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것은 바람 때문일 테고, 웅덩이가 물결을 일으킨 것은 갈대의 흔들림 때문일 터였다.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양들의 방울소리로, 여왕의 고함소리는 목동들의 외침으로 바뀔 터였다.”
*루이스 캐롤 저, 손영미 역, 시공사(2015), p. 183
기획: 오선영
글: 박성진(이종글쓰기 작가)
인터뷰: 최영식, 오선영
인터뷰 글 교정/교열: 오주영
번역/감수: 송미경, 오선영